‘반도체 의존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산업의 질주는 겨우 현상유지 수준인 다른 산업에서 울려나오는 경고음을 흘려듣게 만든다. 이른바 ‘반도체 착시효과’다. 중국의 맹렬한 추격, 과당경쟁에 따른 가격 하락이 본격화되면 반도체산업에 기댄 한국 경제의 회복세는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반도체시장은 2016년 2분기부터 호황이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시장 규모는 4122억 달러로 전년 대비 22% 성장했다. 스마트폰,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에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해서다.
한국 반도체기업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17일 시장조사기관 IHS마켓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58%에 이른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액 합계는 191조6000억원으로 2016년보다 27.2%, 영업이익은 48조2000억원으로 189.3% 늘었다. 반도체는 지난해 한국 경제 회복에 큰 몫을 했다. 반도체산업은 지난해 수출의 17.0%, 2016년 2분기부터 1년간 설비투자 중 20.2%를 차지했다.
반면 나머지 산업의 성적표는 좋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30대 그룹 상장사 180곳의 지난해 총 영업이익은 41조3000억원이었다. 180개 기업의 영업이익을 모두 합쳐도 2개 반도체 회사의 영업이익보다 낮다.
반도체 호황은 끝이 보이고 있다. 가트너 등 주요 시장조사기관은 내년 상반기까지 반도체 호황이 이어진다고 내다본다. 이후에는 가격 하락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반도체’를 준비하라고 입을 모은다. 새로운 서비스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불합리한 규제를 제거하는 게 첫 단추가 돼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다른 업종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고 산업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장은 “일자리 창출에 많은 기여를 하지 못하는 반도체 등 주력 제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력이 높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키울 전략을 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커지는 ‘반도체 쏠림’ 우려 목소리
입력 2018-06-1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