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혹은 ‘캔디’. 로맨틱 코미디는 이 공식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랑에 빠지게 된 남녀의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내려면 갈등 요소가 너무 무겁지 않게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를 잘 뜯어보면 드라마든 영화든 ‘사랑이 이뤄지기 힘들게 하는 주변 환경’이 갈등의 축으로 작용한다.
로맨스와 코미디를 한 작품에 녹여내려면 탄탄하고 흥미로운 서사를 가져가기 힘들다.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는 ‘캐릭터의 힘’이 어느 장르보다 중요하다.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는 주인공의 매력에 기댄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매력적인 주인공이 명대사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게 로맨틱 코미디의 성공 방정식인 것이다.
화제작 ‘김비서가 왜 그럴까’(tvN)는 로맨틱 코미디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듯하다. 재벌 3세 부회장 이영준(박서준)과 그의 비서 김미소(박민영)가 주인공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보이고 ‘캔디’도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9년 동안 까다로운 이영준 부회장을 보좌해 온 비서 김미소가 사직서를 내면서 극이 시작된다. 매일 24시간을 저당 잡힌 채 완벽하게 이영준을 모셔왔던 김비서가 ‘이제는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김미소는 부회장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이영준을 비롯해 그의 부모인 회장 부부까지 모두 김미소를 붙잡으려고 한다. 김미소는 ‘캔디’지만 ‘줄리엣’은 아니다. 반전이 신선하다.
스토리가 흥미롭지만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인기 비결은 역시 캐릭터에 있다. 동명의 웹소설과 웹툰이 원작이라 캐릭터 자체가 다분히 만화적이다. 원작 웹소설이 누적 조회수 5000만뷰를 기록했고 카카오스토리에서 연재 중인 웹툰도 웹소설 못잖게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부터 원작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관심을 모았었다.
드라마 속 이영준은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의 매력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심각한 나르시시스트로 거울을 보고 놀라거나 “이 녀석, 이영준”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만화가 아니라 드라마로 이 대사를 들으면 오글거리고 어색할 것 같지만 코믹하고 사랑스럽다.
이영준을 연기하는 박서준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게 크다. 박서준은 로맨틱 코미디로 연타석 홈런을 친 경력이 있다. ‘그녀는 예뻤다’(MBC·2015년)에 이어 ‘쌈, 마이웨이’(KBS·2017년)까지 인기를 모으며 로맨틱 코미디에 특화된 배우로서 입지를 탄탄히 해 왔다.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지만 김미소는 아픔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영준의 비서가 돼 의사가 된 두 언니의 학비를 대고, 툭하면 빚을 내는 아버지의 사고 뒤처리를 감당한다. 자신의 삶을 갖지 못했던 소녀 가장 김미소가 홀로서기를 하려는 모습은 20대 청춘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김미소 역의 박민영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데뷔 12년 만에 처음이다. 첫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이라는 게 무색할 만큼 박민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김미소다. 줄곧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 온 박민영의 진가가 확인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만찢남’ 박서준·‘로코 신예’ 박민영, ‘뻔∼한’ 로코, 신선하게
입력 2018-06-1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