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는 보조적?… 요즘엔 주체적!

입력 2018-06-18 04:0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검법남녀’ 정유미, ‘미스 함무라비’ 고아라, ‘무법 변호사’ 서예지, ‘스케치’ 이선빈.

장르물 드라마에서 여성 캐릭터는 주로 보조적인 존재였다. 수사나 추리를 돕고, 남자주인공에게 영감을 주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민폐를 끼치는 게 여주인공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전형성에 균열이 생겼다.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다.

‘검법남녀’(MBC)의 초임 검사 은솔(정유미)은 ‘요즘 20대’의 통통 튀는 모습을 보여준다. 20대가 쓰는 언어를 쓰고, 무서우면 무섭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검사라며 어깨에 힘을 주지 않는다. 때론 초보적인 실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자에게 혼이 나기도 한다.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 같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데 있어서는 실력 있는 검사다. 한 번 본 건 잊지 않는 천재적인 기억력, “검사 놀이 그만하고 시집이나 가라”는 준재벌 부모님의 폄하와 성화에도 제 갈 길을 가는 근성의 소유자다. 사회 초년생의 실수나 패기가 오히려 현실감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스 함무라비’(JTBC) 박차오름(고아라)은 음대 출신 판사로 법조계에 관심을 모으는 인물이다. 한없이 여성스러울 것 같은 스펙이지만 투철한 정의감과 별난 오지랖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다. 짧은 치마를 입고 출근했다며 의상을 지적하는 부장판사 앞에 눈만 드러내는 아랍 여성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등 ‘똘끼’ 충만한 인물이다.

‘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서울중앙지법에 처음 부임한’ 탄탄한 스펙의 박차오름의 사소한 실수는 ‘민폐 끼치는 여자의 행동’이 아니라 ‘초임이라 있을 수 있는 일’로 해석된다. 여성 캐릭터의 스펙이 올라가면서 드라마 속 여주인공도 주체적인 한 사람으로 평가가 가능해졌다.

지속적인 가정 폭력에 시달려온 여성의 변호사가 편파 판결을 내린 판사를 폭행해 자격정지를 당했다. 이런 스토리를 가진 변호사는 으레 남자일 것 같지만, 아니다. 조폭에 맞서고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당당한 인물은 ‘무법 변호사’(tvN)의 하재이(서예지)다.

귀엽고 발랄한 외모의 여성 경찰은 근무 중 위험에 처하거나 사건 현장에서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등장하기 일쑤다. 하지만 ‘스케치’(JTBC)의 유시현(이선빈)은 해결의 열쇠를 쥔 인물로 나온다. 사건 현장을 미리 보고 그 장면을 스케치로 남겨 미래의 사건을 막는 역할이다. 외모와 달리 독설과 욕설로 무장해 반전의 즐거움을 준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이 드라마에 녹아들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의 법조계에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법정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도 주체적인 인물로 진일보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