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15일 직접 검찰에 고발하는 대신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번 사태에 연루된 고등법원 부장판사 4명 등 모두 13명의 판사를 징계 절차에 넘기고 일부는 재판 업무에서도 배제했다고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이 지난달 25일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 21일 만에 내놓은 후속 조치다. 공을 넘겨 받은 문무일 검찰총장은 퇴근길 기자들에게 “수사가 원만히 진행되고 사실과 진실이 밝혀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상 초유의 사법부를 상대로 한 검찰 수사가 현실화될 전망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1시30분쯤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국민 여러분께서 느끼셨을 충격과 분노에 대해 사법부를 대표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서면 담화문에서 “국민의 준엄한 꾸짖음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한 데 이어 두 번째로 밝힌 대국민 사과다.
이어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고법 부장판사 4명을 포함한 13명의 법관을 징계 절차에 회부했다”며 “관여 정도 등을 고려해 이 중 9명은 재판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특조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 자료를 영구 보존토록 지시했다며 “사법부가 지난 잘못을 잊지 않고 그 잘못을 시정할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겠다는 다짐”이라고 했다.
재판 거래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김 대법원장은 “재판은 무릇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외관에 있어서도 공정해 보여야 한다”며 “재판 거래는 대한민국 법관 그 누구도 (있었다고) 상상할 수 없다는 저의 개인적 믿음과 무관하게 의혹 해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됐던 ‘대법원장의 직접 고발’과 관련해선 수사 수용 의지만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섣불리 고발이나 수사의뢰와 같은 조치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신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조단이 확보한 모든 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하고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직접 수사를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시민단체 등이 검찰에 고발한 사건의 수사가 시작된다면 이에 협조하겠다는 의미다. 김 대법원장은 “수사나 재판을 담당하는 분들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진실을 규명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는 지난 11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에서 대법원장이 직접 고발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당시 법관대표회의는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의결하면서 “이미 충분히 고소·고발이 이뤄졌으므로 대법원장이 직접 조치를 취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입장을 모았다. 적극적인 형사고발을 요구하는 여론으로부터 김 대법원장의 선택지를 넓혀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대법원장의 담화 발표 직후 대법관 13명도 입장문을 냈다. 재판거래 의혹 자체에 대한 불쾌감을 강하게 드러내 김 대법원장과는 온도차를 보였다. 대법관들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대등한 지위에서 참여하는 대법원 재판에선 그 누구도 특정 사건을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선고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며 “의구심을 해소하고 법원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의견을 밝힌다”고 했다.》관련기사 3면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김명수 대법원장 “고발하지는 않겠지만, 수사하면 협조하겠다”
입력 2018-06-15 18:19 수정 2018-06-15 2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