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투표율이 60.2%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지만 ‘샤이 보수’는 없었고 보수는 결국 참패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등한 성적을 거뒀던 보수 진영이었기에 이번 결과가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거에서 중요한 잣대인 인물, 가치, 능력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보수의 총체적인 난국을 참패 원인으로 꼽는다. 자유한국당은 김문수 전 경기지사, 이인제 전 의원,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 ‘올드보이’를 국민들에게 선택지로 내놨고 ‘반공 보수’를 선거 기조로 삼았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남북 대화를 깎아내리기에 바빴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금의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 국가주의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다”며 “태극기나 들고 다니는 냉전 및 반공 보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 때 되살아났는데 그것이 보수 몰락의 계기였다”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가 해결 기미를 보이는 상황에서 ‘반공’이라는 보수 가치에 과도하게 집착했다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경우 유승민·안철수라는 대선 후보급 인물과 중도개혁이라는 가치를 내세웠으나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을 대체할 만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의 결합’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박주선·유승민 공동대표가 사안마다 충돌하면서 정체성 혼란으로 귀결됐다. 급하게 만든 정당이어서 지역 조직도 전혀 없었다. 한 바른미래당 의원은 “우리는 지방선거를 치를 만한 능력이 없었다”며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 밀린 것도 당 세부 조직을 정비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인적 청산과 ‘새 피’ 수혈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15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며 군 출신 정치인들을 과감히 쳐내고 정치 신인을 대거 영입했다. 김문수 후보와 홍 전 대표가 그때 정계에 입문했다. 보수 진영이 군사독재 세력 이미지와 작별한 것은 그때부터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올드보이들이 정계은퇴를 해야 빈 공간이 생긴다. 망한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쇄신 작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한다”며 “보통 인물이 아니라 대통령이 될 만하거나 미래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진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보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바른미래당의 유 전 공동대표가 주장하는 ‘개혁보수’나 손학규 전 선거대책위원장이 언급하는 ‘합리적 중도’ 노선 모두 모호하다는 비판이 많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국도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한 상황에서 과거처럼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보수가 갈 길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철학적 기초를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보수 진영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이 실수하지 않고 현 지지율을 잘 유지한다면 보수의 암흑기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폭삭 망해놓고 단 6개월 만에 번듯하게 빌딩을 올리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며 “중장기적인 긴 호흡이 필요하다. 서두르고 안달하면 잘못된 수를 놓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동성 이형민 기자 theMoon@kmib.co.kr
유권자 수준은 높아지는데…인물·가치·능력 ‘3無’ 야권, 폭망 자초
입력 2018-06-1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