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 생명력을] 기독인 삶은 자기부정… “내가 죽어야 주님이 내 안에 산다”

입력 2018-06-18 00:00 수정 2018-06-18 17:05
십자가 신앙을 강조한 종교개혁자 장 칼뱅.
교회 개혁은 성도 개개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 때 비로소 시작된다. 미국 순수예술가 존 싱글턴 코플리의 ‘예수님의 승천’(1775).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국민일보DB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1602). 독일 포츠담 상수시 미술관에 있다. 국민일보DB
백석대 총장 장종현 목사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선포가 강단 회복의 시작이라면 성도 개개인이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이 교회 개혁의 시작이다. 인본주의적 요소를 십자가와 부활보다 더 강조하다 보니 교회와 교단이 분열하는 것이며, 십자가를 지려는 노력이 없다 보니 교회가 점점 세속화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과 한국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자기부정,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삶

‘오직 그리스도’의 진리는 기독교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진리는 우리에게 삶의 변화를 요구한다.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모범이 되셨다. 그 삶이 ‘십자가와 부활의 삶’이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기독교강요’ 3권 6∼8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자기부정’으로 요약했다. 자기부정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삶을 사셨듯이 우리 믿는 사람들도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셨다.(히 5:8)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주님의 제자로서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의 말씀을 지키지도 않고 그의 성품을 본받지도 않고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사명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것은 잘못이다.

영적 생명, 십자가 복음으로만 가능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영적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무슨 말인가.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셔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시기 위해서는 먼저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자아가 날마다 죽어야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신다.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영적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내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

영적 생명의 역사는 십자가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어떤 고난을 감당하셨는지 가슴 깊이 체험해야 한다. 십자가의 복음을 들어야 내가 죽는다. 내가 죽어야 비로소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산다.

화평을 이루신 예수님을 모셔야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시면 명예와 영광보다 예수님을 더 높이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다수 성도와 한국교회는 예수님보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 겉으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론 자신의 명예와 부를 추구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분열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서로를 미워하고, 교단들은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을 거듭하는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 더 나아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막힌 담을 헐어 버릴 수 있는 것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뿐이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서도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화평을 이루는 분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 될 수 있다. 한국교회가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회복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살아야 한다. 그래야 미움과 분열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는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나 되라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 영적 생명의 역사는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십자가와 부활의 삶은 ‘자기희생’이다. 자기의 욕심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눅 9:23)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삶은 우리 힘으로 가능하지 않다. 자기 부인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다.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갈 5:16) 성령님의 지배를 온전히 받는 삶, 그것이 성령충만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삶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말과 행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다.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도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가능하다.(슥 4:6) 성령을 받아야만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

성령충만으로 교회에 생명력을

그렇다면 성령 충만은 어떻게 받아야 하나.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눅 11:13)

당연히 목회자와 신학자는 무엇보다 기도의 사람이 돼야 한다. 기도해야 성령 충만할 수 있다. 성령 충만해야 영적인 말씀의 지배를 받아 생명력 있는 목회를 할 수 있다. 그래야 교회를 살리는 영적 지도자를 길러 낼 수 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고 전해야 한국교회가 영적 생명을 회복할 수 있다.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 수 있다.

나는 과연 십자가와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은 열매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있는 곳이 나로 인해 화목과 평안이 이뤄지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다. 만약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가 아직도 분란과 불화로 가득 차 있다면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다.

교회는 주님의 보혈공동체로서 십자가와 부활이 증거되는 곳이다. 우리가 십자가와 상관없는 길을 갈 때 교회는 세상 모임과 다르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