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리처드 3세는 악의 화신이자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재자로 통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속성보다 그의 엔터테이너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가 어떻게 관객을 유혹하고 즐겁게 만드는지 말이죠.”
유럽 연극계의 거장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50)가 신작 ‘리처드 3세’로 2년 만에 내한했다. 1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한국에 다시 와서 이 작품을 선보이게 돼 기쁘다. 한국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과 지지에 배우들도 즐겁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인사했다.
오는 17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리처드 3세’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영국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 리처드 3세(1452∼1482)의 생애를 다룬다. 곱사등에 절름발이인 기형적 신체로 태어난 그는 형제와 조카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왕좌를 차지하지만 반란군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오스터마이어는 “극 중 리처드 3세는 사악한 광대처럼 관객을 가지고 논다. 그런 그에게 매혹당한 관객들은 때로 그의 공범자가 된다. 더불어 그의 악한 행동을 자기 스스로에게서도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마주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독재자가 권력을 쟁취하고 휘두르는 과정을 고발하고자 한 작품은 아닙니다. 한발 나아가, 최악의 혹은 최선의 행동을 할 가능성을 가진 모든 인물들의 내면을 탐구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전 이미 기획된 작품이거든요(웃음).”
독일 배우 라르스 아이딩어(42)가 리처드 3세 역을 맡아 섬세한 내면 연기를 펼친다. 오스터마이어는 “언어의 장벽이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아이딩어는 세계 어느 관객과도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자질을 갖춘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공연은 독일어로 진행되고,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오스터마이어는 현대 실험 연극을 선도해 온 독일 샤우뷔네 베를린의 예술감독을 19년간 맡고 있다. 2005년 ‘인형의 집-노라’를 시작으로 국내 관객과도 꾸준히 만나 왔다. 2010년 ‘햄릿’에선 비디오카메라를 활용해 햄릿의 불안과 인간의 이중성을 극대화하는 연출을 보여줬으며, 2016년 ‘민중의 적’에선 ‘다수는 항상 옳은가’라는 논쟁거리를 던졌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과정에서 많은 관객들이 호응해주셨죠. 디지털화된 미디어 세상에서 극장은 유일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3차원의 공간에서 진짜 배우가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현대의 젊은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거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리처드 3세’의 재해석 “악의 화신 아닌 매혹적 광대로”
입력 2018-06-15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