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2시 북 콘서트 출연자로 초대를 받아 찾아간 곳은 골목 어귀의 작은 카페였다. 조금 전 식사를 마친 마을 협동조합 식구들이 모두 나서서 식탁을 치우고 시원한 음료를 준비하느라 바빴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아이고 어른이고 활기가 넘쳤다.
한마을에 살면서 아이들 교육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 보니 뜻이 맞았고,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면서 이런저런 공부나 모임을 하려니 공간이 필요해 밥집 겸 카페를 열게 됐다는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러 숙제도 하고, 일 마치고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놀 수 있어서 아이들이 특히 더 좋아한다고 했다.
사람은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론 함께 어울려 무언가를 하고자 늘 머리를 맞대고 도모한다. ‘혼자 놀기’는 노년 준비의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이지만 그에 못잖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역시 중요하다.
마을 카페에 갔던 다음 날은 91세의 친정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에 가는 날이었다. 심한 요통과 외로움으로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게 됐지만 그렇다고 아들네와의 합가도, 딸과의 동거도 원치 않으신 어머니는 결국 당신 뜻대로 노인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계시다고 하면 많이 편찮으신 모양이라며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거기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도 적잖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듯이 노인요양원은 몸도 마음도 쇠약해진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더는 버틸 수 없어 익숙한 동네, 정든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거처를 옮겼으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끝까지 적응을 못 하거나 병세가 깊어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는 분들을 빼고는, 나이 많고 여기저기 아픈 어르신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몸소 익히고 새롭게 배워나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다른 방법이 없어 마지못해 목숨 부지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지레 단정 짓지 말자.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은 분명 우리 모두의 과제이지만, 앞뒤 살피지 않고 단칼로 잘라내는 비판과 비난은 노년의 삶을 세밀하게 살피며 좀 더 낫게 만드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그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다. 말이 어눌하면 어눌한 대로 귀가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서로 걱정하고 챙겨주면서 오늘 이 시간에도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이 들어 더는 혼자 살기 어려워 택한 삶의 자리에서도 새로 관계가 생겨나고 어울려 살아가는데, 마을 카페의 식구들처럼 젊은 나이에 어린아이들까지 섞여 서로 오가고 나눌 수 있다면 나이 들어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최근 들어 눈에 띄는 공동체 주거에 대한 높은 관심 또한 이런 마음의 반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여서 부지 선정·구입부터 집짓기까지의 전 과정을 함께하며 여러 가구가 소통하며 살든, 그동안 꼭 닫고 살던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이웃 간에 서로 오가며 살든, 사람들 모인 곳에 긴장과 갈등 오해는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문제 자체를 없애거나 문제없는 관계를 찾아내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내가 낳아 기른 자식들과도 갈등은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힘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면, 나이 들어가면서 그동안 살던 동네에서 이웃과 어울려 살든 낯선 곳으로 거처를 옮겨가든 흔들리지 않고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고후 6:10)
▒ 나이 들어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살려면
하나, 너그러움과 내려놓음
나이 먹었다는 증거 중 하나는 바로 쉽게 노여워하고 서운해한다는 점이다. 열심히 살아온 세월 알아주지 않으니 억울하고 화가 난다. 존경은커녕 존중하는 마음조차 없는 것 같아 가슴속에서 불이 난다. 그러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한발 물러서 보자. 쌓인 세월 동안 내가 배운 게 정답이니 나를 따르라고 소리 높여 외칠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내 안에 갈무리해서 숙성시키는 때가 바로 50+다.
둘, 느슨한 관계의 매력
나이 먹어 가면 인간관계의 범위가 줄어들게 되니 아무래도 가족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가족관계가 물론 인생의 마지막까지 남는 관계라고는 하지만 느슨한 관계는 우리의 숨통을 틔워주기도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데 오히려 편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 통하는 게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느슨한 관계의 진가를 알고 소중하게 여길 일이다.
셋, 사람 가난이 가장 무섭다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가난 중에서도 ‘사람 가난’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돈만 모아둘 일이 아니어서 사람도 관계도 저축이 필요하다. 혹시 그동안 이런저런 말로 행동으로 밀어낸 사람이 있는가. 다시 가까이하고 싶다면 우선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말하자. 부모 자식이든 부부든 형제자매든 친구든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이면 늦는다.
유경(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100세 시대 ‘나이 수업’] 함께하는 노년, 어딘들 어떠리…
입력 2018-06-16 00:01 수정 2018-06-16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