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양구·화천·철원, 경기도 연천·파주, 인천 등 10개 시·군이 북한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맞닿은 접경지역이다. 과거 이 지역은 ‘육지 속 섬’과 같았다. 군사적 이유로 개발에서 소외됐고, 재산권 행사는 크게 제약됐다. 전쟁의 불안은 어느 곳보다 컸다.
1998년 11월 대북 해로관광에 이어 2003년 2월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이들 지역에 훈풍이 불었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 고성은 활기로 넘쳤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 간에 쌓인 적대관계와 이질화 과정을 녹여내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군사 충돌이 일어나도 금강산 관광 행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금강산은 ‘평화 관광’의 이미지를 굳혀갔다. 하지만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에게 피격돼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금강산 관광은 10년째 멈춰 있다. 여파로 접경지역 경제는 침체로 접어들었다.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휴·폐업 상가가 속출했다. 상권이 붕괴되면서 수백명이 일자리를 잃고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평화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6·13 지방선거에서도 이슈로 등장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남북 교류 관련 ‘평화 공약’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유일한 남북 분단 자치단체인 강원도에서 두드러졌다. 금강산 관광지구 복구·재개, 접경지역 규제 완화·지원 및 관광 벨트화 등 관광 분야도 적지 않았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4·27 판문점 선언과 6·12 싱가포르 선언을 누구보다 반긴다. 새로운 희망이 일고 있는 것이다. 접경지역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판문점에서 가까운 파주 관광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십년 동안 제3땅굴 등 안보 관광에만 머물러 있던 것에서 글로벌 관광자원으로 넓혀가고 있다. 외국인을 전문으로 판문점 등의 관광을 진행하는 국내 여행사들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도 있다. 남북 각 2㎞ 폭으로 이뤄진 907㎢가 60년 넘게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남북 간의 공동 완충지대로 남아 있다. 남쪽 군사분계선(MDL)의 5∼20㎞ 내외의 이른바 민간인통제선을 포함할 경우 총면적은 1528㎢나 된다. 한반도 총면적의 25분의 1을 차지한다.
DMZ는 전쟁, 죽음, 분단 등을 상징하는 어둡고 슬픈 땅이다. 반면 관광산업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세계 최고의 스토리가 있는 생태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각종 희귀식물·야생동물·곤충류·파충류·양서류·물고기 등이 서식하는 보물창고 덕분이다.
DMZ의 동해안 북쪽은 금강산, 남방지역은 설악산 지구다. 천하제일의 천연 관광지대다. 파주시는 DMZ 관광의 ‘일번지’로 꼽힌다. 접근성이 좋아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서울과 금강산을 이었던 경원선이 멈춰선 연천과 철원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블루오션인 북한 시장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관광·리조트 업계는 북한의 마식령스키장,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등을 염두에 두고 콘도나 리조트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관광개발은 속초와 원산을 오가는 페리 관광 코스를 구상 중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비해 마련해둔 매뉴얼을 점검·보완해온 현대아산은 관광 경협 본부를 우선 확대·보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희망 이면엔 ‘이번엔 믿어도 될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2007년 10·4 공동선언 등으로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 희망을 품었다가 다시 접은 기억이 남은 탓이다. ‘남북 관계의 진전을 지켜보며 북한이 충분히 개방됐다고 판단하면 관련 관광상품 개발을 검토할 예정’이라는 한 여행사의 입장이 이를 대변해준다. 이번엔 희망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접경지역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까.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내일을 열며-남호철] 희망을 현실로
입력 2018-06-14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