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차드 로드와 패터슨 로드가 만나는 교차로는 12일 이른 아침부터 이미 전면 통제 상태였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행인들은 도로변에 설치된 철제 난간에 몸을 기대 북·미 정상의 모터케이드 행렬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대형 쇼핑몰 ‘아이온 오차드’ 앞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여성 경찰관은 기자에게 “두 정상을 태운 차량이 이 도로를 지날 것 같다. 그때까지는 그 누구도 지금 위치에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먼저 나타난 차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 ‘비스트’였다. 비스트는 오전 8시5분쯤(현지시간) 경찰 오토바이와 밴 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스코츠 로드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길을 지나고 10여분쯤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벤츠 S600 풀만 가드 리무진’이 오차드 로드에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의 차량은 교차로에서 천천히 우회전을 하더니 패터슨 로드를 따라 곧장 직진했다. 비스트는 차체가 전차를 방불케할 만큼 거대하고 육중한 반면, 풀만 가드는 길고 날렵한 화살과도 같았다. 엄격한 교통 통제는 김 위원장의 행렬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다시 10분이 더 지나서야 조금씩 풀렸다.
오랜 시간 길에 묶여 있던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북·미 정상의 행렬을 주시했다. 싱가포르와 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50대 미국인 남성 클리프씨는 꽤 흥분한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이 골수 트럼프 지지자라고 소개했다. 2016년 대선 때도 물론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 클리프씨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러 길가에 나왔는데 온 김에 김 위원장도 보고 가기로 했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빌 클린턴도, 조지 W 부시도, 버락 오바마도 모두 나약한 대통령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뭐라도 하려고 한다. 그게 핵심”이라며 “핵을 가진 북한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회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력한 통제를 성가시게 여기는 싱가포르 시민도 적지 않았다. 한 시민은 “여기에 한 시간은 이러고 있었던 것 같다”고 푸념했다. 그는 경찰에 막혀 꼼짝도 못하는 차량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사람들 모두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기사인 모하메드씨는 “오늘 꽤 많은 사람들이 지각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 고용주라도 오늘 지각한 직원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장인 카펠라 호텔이 위치한 센토사섬은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였다. 이곳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싱가포르’ 등 각종 위락시설이 위치한 곳이다. 평일이었던 탓에 관광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싱가포르 당국은 카펠라 호텔로 직접 통하는 출입로를 제외하고는 섬 안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두 정상이 산책을 즐길 것으로 예상됐던 팔라완 해변에서도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한 남성은 “북·미 정상회담은 잘 모르겠다. 그냥 쉬러 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섬의 경비 상태는 두 정상의 숙소만큼이나 철통같았다. 자동화기를 든 무장경찰이 오토바이를 타고 섬 곳곳을 순찰했다. 수풀 사이에 중무장 장갑차가 매복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호텔 역시 진입로가 좁은 언덕길인데다 주변에 나무와 수풀도 빽빽해 안을 전혀 엿볼 수 없는 천연 요새였다.
싱가포르=글·사진 조성은 기자
회담장 주변 수풀에 중무장 장갑차 매복… 아침부터 전면 통제
입력 2018-06-12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