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장 주변 수풀에 중무장 장갑차 매복… 아침부터 전면 통제

입력 2018-06-12 18:48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진입로에 양국 정상 행렬을 취재하려는 세계 각국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다. 싱가포르에는 이번 회담 취재를 위해 기자들이 최소 3000명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차드 로드와 패터슨 로드가 만나는 교차로는 12일 이른 아침부터 이미 전면 통제 상태였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행인들은 도로변에 설치된 철제 난간에 몸을 기대 북·미 정상의 모터케이드 행렬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대형 쇼핑몰 ‘아이온 오차드’ 앞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여성 경찰관은 기자에게 “두 정상을 태운 차량이 이 도로를 지날 것 같다. 그때까지는 그 누구도 지금 위치에서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먼저 나타난 차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 ‘비스트’였다. 비스트는 오전 8시5분쯤(현지시간) 경찰 오토바이와 밴 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스코츠 로드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길을 지나고 10여분쯤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벤츠 S600 풀만 가드 리무진’이 오차드 로드에서 나타났다. 김 위원장의 차량은 교차로에서 천천히 우회전을 하더니 패터슨 로드를 따라 곧장 직진했다. 비스트는 차체가 전차를 방불케할 만큼 거대하고 육중한 반면, 풀만 가드는 길고 날렵한 화살과도 같았다. 엄격한 교통 통제는 김 위원장의 행렬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다시 10분이 더 지나서야 조금씩 풀렸다.

오랜 시간 길에 묶여 있던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북·미 정상의 행렬을 주시했다. 싱가포르와 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50대 미국인 남성 클리프씨는 꽤 흥분한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이 골수 트럼프 지지자라고 소개했다. 2016년 대선 때도 물론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 클리프씨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러 길가에 나왔는데 온 김에 김 위원장도 보고 가기로 했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빌 클린턴도, 조지 W 부시도, 버락 오바마도 모두 나약한 대통령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뭐라도 하려고 한다. 그게 핵심”이라며 “핵을 가진 북한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회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력한 통제를 성가시게 여기는 싱가포르 시민도 적지 않았다. 한 시민은 “여기에 한 시간은 이러고 있었던 것 같다”고 푸념했다. 그는 경찰에 막혀 꼼짝도 못하는 차량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사람들 모두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기사인 모하메드씨는 “오늘 꽤 많은 사람들이 지각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 고용주라도 오늘 지각한 직원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장인 카펠라 호텔이 위치한 센토사섬은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였다. 이곳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싱가포르’ 등 각종 위락시설이 위치한 곳이다. 평일이었던 탓에 관광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싱가포르 당국은 카펠라 호텔로 직접 통하는 출입로를 제외하고는 섬 안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두 정상이 산책을 즐길 것으로 예상됐던 팔라완 해변에서도 해수욕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한 남성은 “북·미 정상회담은 잘 모르겠다. 그냥 쉬러 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섬의 경비 상태는 두 정상의 숙소만큼이나 철통같았다. 자동화기를 든 무장경찰이 오토바이를 타고 섬 곳곳을 순찰했다. 수풀 사이에 중무장 장갑차가 매복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호텔 역시 진입로가 좁은 언덕길인데다 주변에 나무와 수풀도 빽빽해 안을 전혀 엿볼 수 없는 천연 요새였다.

싱가포르=글·사진 조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