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의 후속 조치를 결정하기 위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의견수렴 절차가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법관대표회의는 이날 “형사 절차를 포함한 진상 조사와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고 의결했다.
김 대법원장은 “의견이 (판사마다) 다르다고 해도 기본 근저는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사법부 갈등 치유와 통합을 예고했다. 이르면 이번 주 중 최종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각급 법원에서 선출된 대표 판사들은 오전 10시부터 경기도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임시회의를 열었다. 재적 대표법관 119명 가운데 115명이 참석했다. 광주지법 고상영 부장판사 등 4명은 재판 일정 등을 이유로 불참했다.
법관회의 핵심 안건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에 대해 법관회의가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였다. 이날 참석한 판사의 절반 이상은 소장 판사들이었다. 지방법원 단독·배석판사만 67명이었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법 부장판사들은 서울고법 조한창 부장판사 등 7명이었다.
정식 표결에 앞서 대표 판사들은 특별조사를 진행한 현 행정처 윤리감사관실 측과 조사 경과 등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옛 행정처 관계자가 서면 조사만 받거나 아예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고 한다. 김흥준 윤리감사관은 문건 공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옛 행정처 문건 410개를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아와 이 가운데 4개 문건을 회의장에서 공개했다.
오후 2시30분부터 사법행정권 남용 안건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미리 발의된 4개 항목의 선언문이 제시되자 일부 판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아예 “사법행정권 남용이 아니다”고 발언한 법관도 있었다. 논의가 끝난 뒤 판사들은 무선 전자 투표기를 통해 4개 항목별로 찬반 투표를 했다.
법관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이번 사태로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와 법관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훼손된 점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어 “형사 절차를 포함한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한다”고 의결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이나 사법부가 형사 고발 등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의견은 아니라고 법관회의 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수사는 수사기관에서 하는 것이니 법원이 촉구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의 선택지를 넓혀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사태를 두고 형사적 조치나 내부 징계 등이 아닌 제3의 해결책 제안도 잇따르고 있다.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한 언론에 보낸 기고문에서 “대법관들이 회의를 열어 스스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최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국회에서 진상규명을 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의 결단도 적극적인 검찰 고발과 수동적인 수사 수용, 제3의 대안 제시 등의 방안 중에서 나올 전망이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출근길에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기 위해 부끄럽지만 모든 것을 발가벗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의견 수렴이 끝나고 결론을 발표한 뒤에도 (사법부가) 하나 된 마음으로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법관대표회의 “형사 절차 포함한 진상 조사 필요”
입력 2018-06-1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