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근로시간단축 현장에 부응 못하는 고용노동부

입력 2018-06-12 05:03
고용노동부가 주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 11일 근로시간 해당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가이드북과 법원 판례들을 공개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들에 다음 달 1일부터 적용되는데 이를 20일 앞두고서야 겨우 취한 조치다.

주 52시간 근로로 바뀌면 새로운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이를 어기면 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그동안 근로시간에 포함됐는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서 회식, 휴게, 출장이동 등등에 대한 근로 여부를 명확히 할 상황이 닥쳤다. 혼란을 막기 위해 노사가 한목소리로 정부에 가이드라인을 요구했는데 이제야 이를 공개했다. 고용부는 이미 가이드북을 지난달 18일 지방노동관서에 배포한 상태다. 필요한 판례들을 추가로 제시한 것은 기업이나 지방노동관서의 상담에서 어려운 점을 개선시키려고 서둘러 준비했다.

고용부가 허둥대며 이러저런 보완책을 뒤늦게 내놓는 것은 정책 의지의 결여로밖에 볼 수 없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여전히 “상당수는 이미 준비됐거나 적극적으로 준비 중”이라며 대부분 대기업과 그 계열사들은 준비가 끝나 크게 걱정할 게 없다는 태도다. 현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설득, 제도 안착을 위한 준비 노력보다는 정책 집행의 속도와 가시적 이행 성과에만 관심을 두는 듯한 모습이다.

고용부의 가이드북이 현장에서 잘 활용될지도 의문이다. 근로시간 해당 여부를 일률적으로 판단할 기준을 정하기란 쉽지 않아 사용자의 지휘·감독 등 구체적 사실관계를 따져 사례별로 판단할 일이다. 다른 나라들도 법률이나 정부 지침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 판례들도 구체적 사안에 대해 여러 사정을 종합해 다양한 판단을 내리는 실정이다. 가이드북과 판례들은 사안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일 뿐 결국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노사가 정해야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주 52시간 근로제의 과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손실과 근로인력 확충으로 인한 고용비용 증가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다. 더구나 근로시간 확정은 그간의 취업규칙을 재조정해야 하는 사안이다. 노사 이해가 충돌해 갈등이 유발될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 정책의 부정적 여파를 보면서도 고용부가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현장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