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소음에 짜증”… 확성기 튼 ‘민폐 유세’ 언제까지

입력 2018-06-08 05:01

서울시장부터 구의원까지 후보 얼굴과 기호를 크게 써 붙인 선거유세 차량이 7일 서울 노원구의 중심지인 롯데백화점 노원점 앞 4거리를 종일 오갔다.

“노원구의 희망! 기호○번 ○○○후보입니다!”

후보의 이름을 알리는 외침과 로고송이 유세차량 확성기에서 쩌렁쩌렁 터져 나왔다. 행인들은 귀를 막은 채 걸음을 재촉했고 상인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현충일을 기리며 잠시 목소리를 낮췄던 선거 소음이 돌아왔다.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최모(55·여)씨는 “일하는 내내 여기서 떠나지도 못하고 방송을 듣고 있어야 하니 정신도 없고 짜증이 난다”며 “소음이 너무 심해 손님들도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31일부터 1주일 사이에 전국적으로 5004건의 선거 소음 민원이 접수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서울 시민의 민원만 765건이었다. 그나마 현충일이었던 6일에는 전국 119건, 서울 16건으로 민원이 적은 편이었다.

오는 13일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투표일까지 1주일을 남겨두고 시민의 관심은 예년만 못하지만 유세 열기는 더 뜨겁다. 군소후보가 난립한데다 광역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교육감까지 한꺼번에 뽑는 지방선거의 특성 때문이다.

특히 지역 중심가에는 대형스크린을 앞세운 유세차량이 종일 세워진 채 영상을 반복해서 틀어댄다. 기자가 최씨의 포장마차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선거유세 때문에 인터뷰를 중간 중간 쉬어야 했다. 노점들이 늘어선 인도에는 구청장 후보 선거유세원들이 우루루 몰려다녔다. 최씨는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공감도 안 되고 시끄럽기만 하다”며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 이런 거 안 해도 되는 것 아니냐”며 불평했다.

노점만이 아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편의점 점원 A씨는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 스피커 소리마저 너무 크게 울리면 정신이 없어서 금방 지쳐버린다”고 말했다.

선거 소음은 사람들이 몰리는 지역 중심가뿐만 아니라 주택가 골목까지 휘젓는다. 서울 관악구의 주부 한모(35)씨는 “한낮에 유세차량이 지나다니면 집 앞만 아니라 다른 골목에서 나는 소리까지 울려 겨우 재워놓은 아기가 깨기 일쑤”라며 “빨리 선거가 끝나기만 기다린다”고 말했다.

선거유세 소음은 규제 기준이 없다. 상인들은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한다. 선거가 끝나면 선출된 구청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상권에 곧바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원역 인근에서 노점을 하는 김모(62)씨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나는 불만 없다. 저 사람들도 저게 다 몇 년에 한 번씩 하는 사업인데 우리가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도 “이번 선거로 어떤 사람이 구청장이 될지 모르는데 우리가 함부로 문제제기할 수 있겠느냐”며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시끄럽게 선거 운동하는 후보는 아예 뽑지 않겠다는 선언도 줄을 이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일 “오늘 들은 선거 로고송 다 기억해놨다가 이름 기억 안 나는 사람 뽑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 “시의원이고 뭐고 소음 생산하는 너는 안 뽑는다”고 썼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