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장들 “사법부가 형사고발 주체 되는 덴 신중해야”

입력 2018-06-07 18:14 수정 2018-06-07 21:30
전국에서 모인 법원장들이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회의실에 앉아 간담회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법원행정처의 사법 거래 의혹을 두고 7시간 30분 동안 격론을 벌였다. 최종학 선임기자

“KTX 해고 승무원 사건 등 합리적 근거없는 의혹 우려”…부산·수원지법 판사들은 “형사상 조치 필요하다”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태 해결의 분수령 될 듯


전국 법원장들이 7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기 행정처 전·현직 관계자들에 대한 고발이나 수사 의뢰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KTX 해고 승무원 사건 등 ‘재판 거래’ 의혹을 두고는 “합리적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했다. 고위 법관들이 검찰 수사 수용에 ‘신중론’을 펼치는 상황에서 법원장들이 더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반면 부산지법과 수원지법 법관들은 이날 전체 판사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여한 전·현직 담당자에 대한 형사상 조치가 필요하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사법부 내 의견 차이가 점점 확대되는 모양새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고심도 더욱 깊어지게 됐다.

최완주 서울고법원장 등 전국 법원장 35명은 오전 10시부터 서울 서초구 대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김 대법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 단장이었던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인사말만 한 뒤 퇴장했다.

이날 모인 법원장들은 법관 경력 30년 이상의 원로 판사들이다. 성낙송(60·사법연수원 14기) 사법연수원장 등 사법연수원 15기인 김 대법원장보다 선배 법관도 다수다. 안 처장이 퇴장한 후엔 기관 서열에 따라 성 원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안건은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에 따른 형사상 조치 여부’와 ‘추가적인 문건 공개 여부’ 2가지였다.

오전에 시작한 간담회는 오후 5시30분에야 끝났다. 특조단이 먼저 조사 결과와 법리적 쟁점을 설명했고 법원장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재경지법의 한 법원장은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의 형사상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특조단의 이유를 듣자 법원장 대부분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다른 법원장은 “사법부나 김 대법원장 이름으로 고발이나 수사 의뢰를 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컸다”며 “전국 법관들의 의견 차이를 극복하는 게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옛 행정처 문건을 추가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참여연대 등이 정보공개 청구를 한 상황에서 법원장들이 따로 입장을 내는 건 부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 법원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특정 언론사와 변호사단체가 거론된 문건 등을 열람한 뒤 ‘그냥 공개하자’는 의견과 ‘불필요한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섰다”며 “결국 관련 부서가 절차에 맞게 대응하도록 (법원장들은) 언급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했다.

참석자 중에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에서 근무한 법원장도 있다. 한승(51·17기) 전주지법원장은 2014년 2월부터 2년간 행정처 사법정책실장으로 재직하며 상고법원 도입 원안을 마련했고 국회와 각종 토론회에 참석해 도입 필요성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이번 사태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는 각 법원에서 선출된 판사 119명이 모일 예정이다. 법관대표회의에 참여하는 한 판사는 “회의 의결권은 대표 판사 1인당 1표”라며 “사법부 내부 여론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진정서를 유엔 인권이사회 소속 ‘법관과 변호사 독립 특별보고관’에게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