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혁신? 기관장 없는 ‘空空기관’ 43곳… 방치하는 까닭은

입력 2018-06-06 18:43 수정 2018-06-06 23:37

방송광고진흥公 반년째 부재… 27개 기관이 두 달 이상 방치
“與 지방선거 탈락자 위한 자리 확보 아니냐” 지적도
공공기관 혁신 위해서라도 공석 기관장 조기 선임 시급


공공기관 10곳 중 1곳에 ‘수장(首長)’이 없다. 임기가 끝났거나 채용비리에 연루돼 해임되는 등 공석 사유는 다양하다. 다만 오랜 시간 빈자리를 방치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나 수도권매립지공사의 경우 6개월이 되도록 ‘사장은 부재중’이다.

경영 공백은 업무추진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경영 혁신이 제대로 추진될지도 미지수다. 일부에선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지방선거 이후 ‘제 식구 챙겨주기’ 차원에서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국민일보가 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서 338개 공공기관의 임원 현황을 파악한 결과 43곳(12.7%)의 상임 기관장이 빈자리다. 전임 기관장이 임기 만료로 물러난 뒤 신임 기관장을 찾지 못한 곳이 있는가 하면 ‘특별한 이유’로 공석인 곳도 있다. 항공안전기술원은 정연석 원장이 채용비리에 연루돼 지난 2월 옷을 벗은 이후 새로운 기관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이재현 사장이 지난 1월 사의를 표명하고 인천 서구청장에 출마하면서 공석 상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취임한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1월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난 뒤 후임자를 찾지 못했다.

곳곳이 빈자리이지만 신임 기관장 선임은 요원하다. 기관장이 없는 공공기관 가운데 절반 이상은 2개월 이상 공석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4월 이전에 ‘기관장 공석’에 빠진 공공기관은 27곳에 이른다. 지난해에 기관장이 물러난 공공기관도 4곳이나 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대표적 사례다.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곽성문 사장이 지난해 12월 임기를 마치고 떠난 뒤 아직까지 사장 자리는 비어 있다.

공공기관장 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장은 보통 임원추천위원회 추천 후 공공기관 형태에 따라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의결을 통해 선출되거나 상위 정부부처 장관이 임명한다”며 “시일이 걸리기는 하지만 6개월씩 걸리는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지지부진한 공공기관장 선임은 ‘정치논리’와 연결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오는 13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선, 지방선거 이후를 보고 자리를 비워뒀다는 주장이다. 이미 공공기관장 자리에 여당 출신의 ‘낙하산 논란’이 수시로 불거졌다는 점도 의심을 키운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오영식 한국철도공사 사장,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 등은 정치권 낙하산이라는 눈총을 받으며 홍역을 치렀다.

기관장 부재는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 혁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5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최종 확정했다. 공공기관별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 기반 구축을 위한 혁신 방안을 만들라는 게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다. 임직원이 50인 이상인 251곳의 공공기관은 오는 29일까지 방안을 짜야 한다. 대상 공공기관에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처럼 수장이 없는 곳도 들어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신임 기관장이 오면 경영 방침을 새로 수립하게 될 텐데 지금처럼 기관장이 없는 상황에서 (방안을) 수립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세종=신준섭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