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 지나치면 안 돼

입력 2018-06-07 05:05
국민연금이 5일 대한항공에 공개서한을 보내 경영진 및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 여부와 경영관리체계 개선을 요구했다. 지난달 30일 보건복지부 기금운용위원회가 서한 발송을 의결했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이자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2대 주주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공개서한 발표에 이어 보건복지부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도 보도자료를 내 대한항공에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을 저해할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해소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이 전문위원회는 기업의 주주총회에 상정되는 중요 안건의 찬반을 결정하는 역할을 해왔다. 두 기구 모두 주주권 행사 차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 기업에 이런 서한을 보내고 대책을 요구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마치 협공하는 모양새여서 관련 기업들로서는 우려와 긴장이 벌써부터 이만저만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내달부터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시행을 예고하고 현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국민연금이 중점관리 기업 명단을 작성해 임원 후보 추천이나 주주대표소송 등 주주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항공 사례에 이를 한 달 앞당겨 적용함으로써 사례 연구는 물론 기업들의 반응을 점검하는 듯한 인상이다.

전문위는 대한항공에 대한 행위가 자본시장법상 경영권 간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국내 기업만 276곳이다. 더 큰 지분의 기업들로서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커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됐다. 더욱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재벌 개혁 등 정부 정책을 지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낳고 있다.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정함에 있어 기업들의 이런 우려를 적극 해소해야 한다. 단기적인 정책 집행의 보조 역할만 강화해 특정 기업을 손보는 데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 기업 경영의 효율을 떨어뜨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생활 자금인 만큼 장기적 안목에서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