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삶의 질 유지가 우선이다

입력 2018-06-07 05:00

가족을 포함해 지인들이 암 진단을 받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 현대인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종류도 다양하다. 위암 췌장암 간암 폐암 난소암 유방암 구강암 식도암….

암 진단 후 치료에 임하는 자세는 저마다 다르다. 한창 나이 때의 암 진단 자체가 곤혹스럽고 그만큼 경황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 어느 날 갑자기 암의 습격을 받고 치료를 시작해야 할 때 잊지 않고 실천했으면 싶은 게 있다. 상황에 관계없이 삶의 질 유지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대처방법을 결정하는 것이다.

거북한 퀴즈부터 하나 풀어보자. 당신이 암 진단을 받는다면 다음 4가지 중 어느 방법을 선택하시겠는가.

①완치는 힘들고 장애가 남을 수 있다 해도 일단 눈에 띄는 암 덩어리는 제거할 수 있으므로 수술을 받는다. ②방사선과 항암제 치료를 받으며 최대한 연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③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의탁한다. ④기타.

본인이나 가족이 암 진단을 받았다고 털어놓는 이들에게 내는 퀴즈다.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오답이라고 확실히 선 긋는 게 쉽지 않다. 선택지마다 장단점이 있는 게 함정이다.

①과 ②의 경우 생존기간 연장이 가능해도 자칫 치료 중이나 후에 부작용과 합병증이 나타나 괴로움을 겪을 수 있다. 암 치료 후 장기간 무병 생존은 의사들도 선뜻 보장하지 못하는 숙제다. ③도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것은 ①②와 마찬가지다. 놔두면 6개월을 못 넘길 것이라는, 사실상 사망진단을 받고도 1∼2년 이상 장기 생존한 사례가 없지 않아서다.

암 진단자가 치료에 임해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치료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연명에 있는지, 완치에 있는지, 삶의 질 개선에 있는지 잘 따져야 한다는 말이다.

좀처럼 확신이 안 들면 ‘닥터 쇼핑’이라도 해야 한다. 복수의 병원에서 자신의 몸 상태와 치료계획에 대해 알아본다고 욕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생명 연장과 삶의 질 유지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녀보면 곧 알게 된다. 치료계획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대다수 전문의들이 암 치료 시 가이드라인(표준 치료 지침)을 따르고 있어서다. 병원이나 의사를 바꾼다고 표준 치료의 원칙이 내용적으로 바뀌는 경우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병원에 따라 치료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선택지 ①②③번과 같이 어떤 게 잘못됐다고 할 수 없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병원 또는 의사의 성향에 따라 우선추천 순위가 달라지는 것일 뿐이란 얘기다.

예를 들면 A병원에서는 수술부터 하자고 하는 반면 B병원에서는 방사선 치료를 먼저 하자고 해 의견이 갈리는 식이다. 이때는 다시 C병원의 의견을 받아보되 가급적 삶의 질이 나빠지지 않는 쪽으로 선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치료법이든 레스토랑 추천 코스를 선택하는 식으로 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좌우할 암 치료계획에 대해 나름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얼마를 더 살든 삶의 질을 계속 유지하다 갈 수 있는지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참고로 의사들은 암 치료 시 몇 가지 치료옵션 선택지를 제시하며 치료 후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생명 예후라고 한다)에 더 중점을 두고 환자 측에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를 살리는 것, 죽지 않게 하는 게 기본 사명인 까닭이다.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게 목숨이므로 암 치료로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는 것의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필자는 치료 후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누리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