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귀사 경영진 관련 국가기관 조사 이어져 사실관계 듣고 확인해야”
해결 방안 미흡 판단 땐 주총서 의결권 행사할 듯
국민연금이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심각한 경영리스크를 겪고 있는 대한항공에 주주로서 공개서한을 보내 경영진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면담을 통해 이번 사태의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촉구하되 미흡할 경우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5일 대한항공에 ‘국가기관의 조사 보도 관련 질의 및 면담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식 12.45%를 보유한 2대 주주이자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11.81%를 보유한 2대 주주이다.
기금운용본부는 서한에서 “최근 귀사 경영진과 관련한 여러 국가기관의 조사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는 대한항공에 대한 신뢰성 및 기업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공단은 대한항공의 주주로서 기금의 장기 수익성 제고를 위해 해당 사안에 대한 명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에 대한 귀사의 입장을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청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또 “상기 사항에 대한 귀사의 입장과 그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요청하며, 귀사를 대표할 수 있는 경영진 및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하니 오는 15일까지 회신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의 주주총회 의결권이나 배당 외에 경영상 문제를 두고 공개적으로 개입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진그룹은 오너 일가 우호지분이 38.29%에 불과해 주총에서 표 대결이 벌어질 경우 국민연금(지분율 9.84%)이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앞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이행할 경우 관행처럼 이어져온 대기업의 불투명한 경영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자율지침을 말한다.
실제로 국내 25대 대기업그룹 상장사 오너 일가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우호지분이 평균 4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이 주요 경영 현안을 놓고 표 대결을 벌일 때 국민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는 구조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32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25곳의 상장사 지분(3월 말 기준)에서 오너 일가 측 우호지분 비율은 평균 43.23%로 집계됐다. 이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보유 지분(평균 38.19%)에 우리사주(0.68%)까지 포함해도 오너 일가의 실질적인 우호지분율은 38.87%에 불과하다. 나머지 지분은 소액주주 등 기타 주주가 30.30%, 외국인투자자(20.48%), 국민연금(5.99%) 등의 순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모비스는 오너 일가 우호지분율(이하 자사주 제외)이 30.17%에 불과해 지난달 29일로 예정됐던 주주총회에서 분할·합병안에 대한 국민연금(지분율 9.82%)의 찬성이 매우 절실했으나 이를 확신하기 어렵게 되자 결국 주총을 취소했다.
삼성그룹은 오너 일가 우호 지분율이 평균 34.00%이며,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17.74%에 불과하다. LG그룹은 36.68% 수준이고 SK그룹은 26.71%이다.
정건희 홍석호 기자 moderato@kmib.co.kr
대한항공 경영진에 면담 요구… 2대 주주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첫 공개서한
입력 2018-06-05 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