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협조가 절실했던 ‘양승태 대법원’의 시선은 사법부 내부로 향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은 2015년 9월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이란 문건을 만들었다. ‘박정희정부 시절의 대통령 긴급조치 발령행위는 위법하다’는 서울중앙지법의 1심 선고가 나온 직후였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 입맛에 맞는 판결 목록을 정리하고 있던 행정처 입장에선 ‘우호 관계’를 깨는 돌출 행위나 다름없었다.
행정처는 헌법과 관련 법령, 해외 사례까지 조사해 해당 1심 재판장에 대한 징계를 검토했다. 법령 위반으로 보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직무 윤리 위반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해당 법관 징계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행정처는 5일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이 조사보고서에 인용하지 않았던 파일 8개를 추가로 공개했다. 새로 밝혀진 ‘문제 법관에 대한 시그널링 및 감독 방안’ 문건이 작성된 시점도 2015년 9월이었다. 행정처는 문제 법관을 승포판(승진을 포기한 판사)이라 지칭했다. “승진을 포기한 판사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다양한 감찰 활동 등 사법행정권의 적절한 발동이 긴요하다”고 적었다.
행정처는 문제 법관에 대한 단계별 대응 방안까지 마련했다.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 등 행정라인을 통해 감독하고 심지어 빅데이터를 활용한 모니터링도 시행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출퇴근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재판업무에 불성실한 판사를 가려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승진을 포기한 법관들의 나태함이 소장 판사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이유를 댔지만 당시 행정처는 청와대 기조와 어긋나는 판결을 한 하급심 재판부의 징계 가능성을 검토 중이었다.
상고법원에 반대하던 국제인권법연구회는 꾸준한 감시 대상이었다. 행정처는 2016년 3월 “사법행정 간섭을 위해 판사회의를 이용하려는 조직적 시도가 포착됐다”며 ‘판사회의 순기능 제고방안’이란 문건을 만들었다. 사법개혁을 추진하던 판사들의 움직임을 ‘불순한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행정처는 판사회의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비민주적’ 행위로 규정했다. 대신 상고법원을 위해 작성한 ‘VIP 보고서’에는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님 의중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적었다.
하급심 재판 배당·진행 상황도 행정처의 관리·감독 대상이었다. 행정처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의 기소가 이뤄지기 전에 해당 사건을 심리할 법원과 재판부를 사전 검토했다(국민일보 5월 30일자 11면 참조). 박근혜정부의 정통성과 직결되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사건 재판은 2013년 1심부터 파기환송심 심리까지 주요 모니터링 대상이 됐다.
파기환송심 준비절차가 진행되던 2015년 10월 행정처는 “현재 상태에서 향후 심리 범위·정도를 가늠하긴 어렵다”며 담당 재판장, 주심판사와 통화한 내용을 기록했다. 파기환송심을 향한 행정처의 관심은 1년 가까이 이어졌다. 특별한 이유 없이 사건 심리가 지연된다는 언론의 지적에 야당 의원들이 직접 재판정을 방문하자 행정처는 서울고법 공보라인을 통해 재판 내용과 의원들의 방청 모습, 법원기자들의 취재 내용을 파악했다. 원 전 원장 파기환송심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이 교체된 지난해 8월에 선고됐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양승태 대법원, 문제법관은 ‘승포판’으로 관리… 판사모임도 감시
입력 2018-06-05 18:29 수정 2018-06-05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