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러다 근로시간 단축도 최저임금 전철 밟을라

입력 2018-06-06 05:01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이 한 달도 안 남았지만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지침)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정부 경제정책의 난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시장 대혁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국회가 1주 근로가능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한 게 지난 2월이다.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및 공공기관은 의무적으로 개정안을 시행해야 한다. 위반 시에는 사업주가 징역·벌금형 등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법안이 통과된지 석달이 지났지만 고용노동부가 구체적인 실행 방안 마련에는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근로기준법이 시행되면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는 이상 알면서도 법 위반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밝혔다. 특히 해상 시운전은 장기간 해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중간에 근로자 교체가 불가능하고 승선 근로자를 증원하면 안전·해난사고, 거주구역 협소 등 위험 요소가 증가하게 돼 유연근로시간제도 도입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시행이 다가왔는데도 직종 특성상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곳은 이뿐만이 아니다. 해외건설, IT 정유 등 장치산업, 벤처업체 등도 마찬가지다. 이미 자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사정이 낫다는 대기업들도 오십보백보다. 임원이 근로시간 단축 대상에 포함되는지, 거래처 관계자와의 식사시간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해외 출장 중 이동시간 등은 어디에 포함되는지 등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아 혼선을 겪은 기업들이 질의해도 고용부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고용부가 결정을 미루는 것은 결국 법원 판결에 맡기겠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 등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후속 대책도 아직 실행 방안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 사업은 근로시간을 주당 평균 두 시간 이상 단축하고 근로자를 한 명 이상 새로 채용한 사업주에게 월 최대 80만원을 지원하는 제도다. 지원금 규모가 워낙 커서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의 관심사지만 적용 대상과 세부적인 지원 방식 등이 확정되지 않아 기업들이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 상태다.

주 52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함께 문재인정부가 내세우는 소득주도 성장의 한 축이다. 무엇보다 이처럼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정부가 무리하게 개정안의 적용을 받지 않는 특례업종을 최소화하는 등 기업 현실을 무시한 데 따른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도 정책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격한 인상으로 큰 논란이 빚어진 최저임금 인상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