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초대 양성평등담당관 유현정 부장검사 “2차 피해 걱정 없도록”

입력 2018-06-05 05:03 수정 2018-06-05 08:04
유현정 대검찰청 양성평등담당관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양성평등담당관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검찰 내 성 비위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대검찰청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청사 6층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만들었다. ‘양성평등담당관실’이란 현판도 붙였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가 우리 사회의 미투(#MeToo) 운동에 불을 지핀 지 4개월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대구지검에서 성범죄·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하던 유현정(45·사법연수원 31기) 부장검사는 초대 양성평등담당관을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엔 정확히 어떤 업무인지 몰라 조금 당황했어요. 그렇지만 지금껏 해왔던 일과 연관성도 있었고 ‘한번 해보자’ 생각했죠.”

지난달 31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유 담당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존 검찰 조직에도 성 비위 사건에 대한 고충 상담이나 신고 절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피해자가 신고해도 2차 피해 걱정 없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인식은 부족했던 것 같다”고 했다.

서 검사의 폭로 이후 대검 검찰개혁위원회는 “조직 내 성 비위 사건을 전담할 상설기구를 신설하라”고 권고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이를 받아들여 만들어진 게 양성평등담당관실이다. 혹시 또 하나의 보여주기 식 대책에 그치는 건 아닐까. 유 담당관에게 이 부분부터 물었다.

“변화된 시대 흐름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만들라는 것이 권고 취지입니다. 지금은 걸음마 단계지만 차별화된 역할을 수행할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유 담당관은 부임하자마자 신고자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게시판을 만들었다. 일선 검찰청의 고충처리 부서와의 협조체계도 정비하고 있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도 꾸릴 예정이다. 그는 그러나 “매뉴얼이나 시스템보다 중요한 건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이라고 했다.

“검찰은 여성의 진출이 최근 급증한 조직 중 하나입니다. 성 비위 가해자가 지금껏 살아온 환경에서 자신의 행동이 성희롱임을 알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성 인지(認知) 감수성을 강화하면 자연스럽게 사건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일선 검찰청 내 고충처리 부서에 접수된 피해 신고는 모두 해당 기관장에게 보고하도록 규정돼 있다. 유 담당관은 “피해자가 가벼운 상담만 원할 경우 보고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을 손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피해자 의사가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2차 피해 걱정 없는 상담 창구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조직은 일반 국민과는 상관없는, 검찰 구성원만을 위한 제도다. 유 담당관은 “건강한 검찰 조직이 갖는 효과는 국민에게 이득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수사부서에서 근무하며 학대를 당한 아동에게 부서원들이 손편지를 써서 격려하고 적금을 들어준 사례를 들었다. “학대 아동을 사회가 품지 않으면 훗날 다른 범죄의 가해자가 되는 등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검사들이 실천해야 할 사법치유 기능을 조직 내부에도 구현하고 싶다”고 했다.

임기 내 이루고 싶은 포부를 물었다. “제 역할이 없어질 정도로 남녀가 평등한 근무환경이 만들어지고 성 비위 사건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죠. 이제 막 첫걸음을 뗐지만,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갈 겁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