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정릉동 김모(82·여)씨의 집을 4일 찾았다. 지은 지 10년이 안 된 빌라와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대어 있었다. 벽은 빌라 건축 당시 발생한 진동 때문에 금이 가 한눈에도 위태로워 보였다. 1940년에 사용 승인을 받은 이 집은 3일 완전 붕괴된 용산구 한강로2가의 상가 건물보다 오래됐다.
70년대 후반 이사 온 김씨는 여력이 되면 상한 부분을 겨우 수리해 가며 지내왔다고 했다. 몇 해 전에는 지붕이 다 떨어져나가고 물이 새서 부랴부랴 기와만 올렸다. 화장실 천장 일부는 움푹 내려앉았지만 방치해 둔 상태다. 김씨는 “불안하지만 여기가 내 집인데 어디로 가겠느냐”면서 “건축물 안전진단 같은 것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릉동 일대에는 김씨 집처럼 30∼40년 된 낡은 주택이 2700여동 있다. 외벽에 금이 가고 지붕이 내려앉아 위태로운 상태가 많았다. 모두 안전진단은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2구역과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A상점 건물은 2층에 주택까지 얹혀있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재개발구역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40년 넘게 그곳에서 장사를 했다는 B씨는 건물의 안전진단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번거롭게 그런 걸 왜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70년에 지어진 아현역 인근 5층짜리 상가건물은 현재 소유권 분쟁 중에 있다.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동안 건물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외벽에는 철근이 튀어나오거나 벽면 일부가 떨어져 나간 곳도 있었다. 이 건물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이모씨는 “어제 용산의 오래된 건물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감이 더 커졌다”며 “당장 가게를 옮길 여력이 안 돼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내 주택들의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서울시 주택노후도 현황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지역 단독주택 2동 중 1동은 지은 지 30년이 지난 노후 주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서울시 건축물대장(2017년 1월 기준)을 통해 공동주택·단독주택의 노후화 정도를 파악했다.
서울지역 단독주택은 31만8440동, 이 중 30년 이상 노후 주택은 15만991동으로 47.4%였다. 전체 주택 대비 노후 주택의 비중은 37.2%다. 노후 단독주택의 비중은 정릉동(74.9%) 창신동(72.2%) 용두동(71.3%) 제기동(70.6%) 후암동(70.5%) 순으로 높았다. 전체 공동주택(13만624동) 가운데 노후 주택의 비중도 12.3%(1만6108동)나 됐다.
현행법상 건축물 안전관리는 기본적으로 소유주 책임이다. 통상 소유주가 신고를 해야 구청 직원이 나가 상태를 살핀다.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구청은 건축구조기술사 등 전문가에게 의뢰해 안전진단을 하고 결과에 따라 주민대피, 긴급철거 등의 행정명령을 내린다. 서울시와 각 구청의 입장은 건물주나 재개발조합의 요청이 없으면 강제로 안전진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유주의 재량에만 맡기다 보니 안전 사각지대가 생기는 셈이다. 주택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수년간 이어지는 경우 세입자는 뚜렷한 안전대책 없이 지내야 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나서 노후 건물의 안전진단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창영 한양대 재난안전공학부 교수는 “일반인들은 안전진단을 해야 한다는 인식도 부족하고 수백만원씩 하는 안전진단을 받을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에서 일부를 지원해서라도 일정 연한이 지난 건축물의 안전진단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용산 건물 붕괴 사고를 계기로 일단 정비구역 내 노후 건축물에 대한 안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윤준병 서울시장 권한대행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0년 이상 지났고 관리처분을 받지 못한 182곳을 대상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나머지도 순차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글·사진=이사야 이택현 김남중 기자 Isaiah@kmib.co.kr
‘잠재적 시한폭탄’… 단독주택 절반이 30년 이상 노후
입력 2018-06-05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