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후년 급격히 올리면 부작용 클 것이라고 지적…‘속도 조절론’에 힘 보태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는 거의 없었다고 선을 그어 사실상 청와대 손 들어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에 힘을 보탰다. 최저임금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내년과 내후년에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5%를 웃돌면 임금 질서 교란 등 후폭풍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 논쟁과 관련해서는 고용 감소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사업주가 종업원을 줄여야 할 정도로 충격이 크지 않고,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 자금이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봤다.
KDI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4일 발간했다. 올해 16.4% 인상된 최저임금(시간당 7530원)의 효과를 뜯어본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했다. 지난 4월 고용 동향을 기준으로 삼아 대략적인 영향을 추계하는 방식을 썼다.
지난 4월의 임금근로자 증가 수(전년 동월 대비)는 14만명이었다. 지난해 연평균 증가폭인 26만명과 비교해 12만명 줄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감소분(12만명)의 ‘출신 성분’에 주목했다. 우선 12만명 중 5만명은 인구 감소에 따른 임금근로자 감소로 봤다. 남은 7만명 가운데 제조업 구조조정과 도·소매업 구조조정 효과 등 다른 변수를 제하고 나면 최저임금 효과에 따른 고용 축소분이 된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제조업 구조조정에서 3만∼4만명, 도·소매업 구조조정으로 2만∼3만명 등이 ‘구조조정 영향권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줄어든 일자리는 넉넉잡아도 2만명 정도다. 이 수치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의 ‘이론적 하한선’에 미치지 못한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헝가리 사례에 한국 상황을 대입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의 상한선을 8만4000명, 하한선을 3만6000명으로 잡았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아직까지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하한선보다 낮은 상황”이라며 “과거의 다른 연구 결과 등을 봐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집단을 떼어놓고 봐도 고용 감소 효과가 미미하거나 되레 임금근로자 수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사업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가격 인상, 종사자 수당 삭감,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대처하고 있고 종업원 감축은 사실상 최후 수단으로 인식한다”며 “일자리 안정 자금의 효과가 충격을 상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진단했다.
KDI의 이번 보고서는 “개인적 경험이나 직관으로 볼 때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장과 배치된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는 없다”고 말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입장에 가깝다.
그러나 KDI도 ‘속도조절’ 필요성을 인정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9년, 2020년에 최저임금을 15.3%씩 올리면 부작용이 상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프랑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2005년 최저임금을 임금 중간값의 60%까지 올렸다.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경력 10년차까지 임금격차가 거의 사라졌다. 이는 근로자의 지위상승 욕구를 꺾고 생산성 하락을 유발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KDI도 “최저임금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
입력 2018-06-0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