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민경] 국민연금, 주주활동 강화해야

입력 2018-06-05 05:00

며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최근 오너 일가가 물의를 빚은 대한항공을 상대로 공개서신을 보내고 경영진과 대화하는 등 주주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의 결정인 데다 그 뜻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밝혔고, 공개적으로 벌이는 최초의 주주활동이라 시장과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국민적 공분이 워낙 큰 사안이라 생각보다는 반론이 많지 않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이후 대한항공의 시가총액 수천 억원이 증발했다는 기사까지 나왔으니 당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올 7월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겠다는 복지부 발표가 있은 후 찬반 논란이 더욱 커진 모양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위탁받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투명하게 보고하는 행동지침을 말한다.

국민연금이 회사에 이래라저래라 얘기하는 건 부당한 경영 간섭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부 영향이 큰 국민연금의 부적절한 관치라는 것이다.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국민연금을 이용해 회사 경영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우려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들을 때면 필자는 되묻고 싶다. 주가가 떨어지고 중장기적으로 회복할 기미도 잘 안 보이는 회사가 있다면 국민연금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워낙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주식을 팔기는 어렵다. 일감 몰아주기, 이상한 합병, 처벌 받은 오너 일가, 가족 간 승계 다툼, 갑질, 회계부정 등 논란이 없는 기업집단을 찾기가 더 어렵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매각하면 잔고에 주식이 남아나지 않을 터다.

그러면 팔지도 말고, 목소리도 내지 말고 있어야 할까. 국민연금이 기금자산 가치가 훼손되는 데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민의 노후자산을 운용하는 자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팔 수 없다면 투자대상 회사의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개선안 마련을 회사에 촉구하고, 필요하다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대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회사와 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국민연금의 주주활동 선언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본다. 그리고 더 확대되어야 한다. 이러한 활동, 주주와 기업 간 대화는 세계 자본시장의 주된 흐름이 된 지 오래다.

기금운용 규모에서 국민연금과 순위를 다투는 해외 유수의 연기금은 활발한 주주활동으로 시장을 선도한다. 네덜란드 연금은 2016년 투자대상 회사와 260회나 대화를 가졌고, 주총 안건 반대율이 10%에 이른다. 노르웨이와 캐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연기금은 주주총회 전에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개해 많은 주주들이 따를 수 있게 한다. 많은 회사들과 대화하는 것은 물론이다. 관치니 연금사회주의니 하는 논란은 이미 사라진 지 꽤 됐다. 기금자산 보호를 위한 주주활동은 연기금 운용자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연기금의 선도적인 활동은 주주와 기업 간의 대화 문화를 확산하는 데 지대하게 공헌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일본 등 세계 20개 국가에서 기관투자가의 대화 등 활동을 장려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시행되는 것은 그러한 활동이 국제적 추세임을 잘 보여준다.

다만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주주활동에 관해 국민연금 내부에서 누가 의사결정을 내리는지가 중요하다. 필자는 현재의 기금운용위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수탁자책임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여기에서 다루게 하면 어떨까 싶다. 여기는 재계, 노동계,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추천한 전문가가 포진해 관치 우려를 덜 수 있어서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잘 개선하고 감시하면 된다. 관치가 우려되니 주주활동을 하지 말자는 것은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를 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일지 모른다.

송민경 기업지배구조硏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