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후보한테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문자 때문에 교회 친목용 교인수첩, 교회서 사라지나

입력 2018-06-05 00:00 수정 2018-06-05 10:20
서울 A교회의 교인수첩.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일부 정보가 빠져 있어 빈칸이 많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 새언약교회(최영호 목사) 목회자와 성도들이 4일 교회 인근 경기도지사 선거벽보판 앞에서 공명선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광주=강민석 선임기자
“OO구 국회의원 기호 O번 후보 선거사무실입니다.”

오는 13일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쇄도하는 유세 전화들로 짜증 날 때가 많다. 개인정보 유출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로 교회의 ‘교인수첩’이 지목되고 있다. 최근 한 종합편성채널도 종교단체들이 만든 교인수첩이 개인정보가 흘러나오는 통로 중 하나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사실 교인수첩엔 교인 사진과 거주지,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상세하게 담겨 있어 개인정보의 보물창고로 여겨져 왔다. 교회들이 효과적인 구역 관리와 교인들의 친교를 위한 수단으로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것이다.

이런 책자들은 과거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개인정보 가치가 커지면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등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교회들은 교인수첩이 악용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제작을 기피하는 추세다. 제작하더라도 일일이 교인들의 의사를 물어 공개를 원하는 부분만 수록하는 게 일반적이다. 설립 역사가 오래된 교회들은 그동안 제작했던 각종 수첩을 일괄 폐기하는 방안까지 모색하고 있다.

서울 영락교회(김운성 목사)는 3일 주보에 ‘교회에서 제작한 수첩 일괄 폐기’라는 제목의 광고를 실었다. 광고에는 “10일과 17일 교회 마당에 설치한 수거함에 수첩들을 넣어 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교회 행정처는 물론 남·여선교회와 교회학교 등 산하 단체들이 제작한 다양한 종류의 수첩을 통해 교인들의 정보가 유출되는 걸 원천 봉쇄하겠다는 취지다.

영락교회 김경오 행정처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인수첩이 선거운동에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해 이런 결정을 했다”면서 “수첩이 수거되는 대로 교회가 거래하는 전문 업체를 통해 완벽하게 폐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교인수첩에서 전화번호를 아예 빼는 교회도 늘고 있다. 서울 남포교회(최태준 목사)는 교회요람에서 교인들의 전화번호를 모두 삭제했다. 외부에서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다. 서울 아름다운교회(황인돈 목사)는 교인들에게 공개 범위를 일일이 물어본 뒤 수첩을 제작하고 있다. 이마저도 올해까지만 제작한다는 입장이다.

황인돈 목사는 “개인정보 수집동의서에 사진, 주소, 전화번호 등 공개를 원하는 부분에만 표시하도록 하고 이를 기준으로 수첩을 제작한다”면서 “이렇게 제작하다 보니 완성된 교인 수첩에 빈칸이 너무 많아 보기 좋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내년부터는 아예 제작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총회 대의원인 총대 명부에서 모든 정보를 삭제한 뒤 이름만 남겨 뒀다. 이상원 총회 전산홍보팀 과장은 “1500명에 달하는 총회 총대들의 개인정보를 아예 삭제하기로 방향을 잡았다”면서 “실제 배포되는 자료엔 노회별 총대 명단만 노출돼 개인정보 악용의 가능성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