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12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하며 높은 기대감을 표시했지만 정작 자국 내 주류 언론들의 반응은 비판적 시각이 우세하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의 회동 후 핵 동결 장기화의 길을 열어줬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북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양보를 얻어내기도 전에 이미 북한에 또 다른 승리를 안겼다고 전했다. CNN은 북한에 핵보유국으로 가는 입장권을 제공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종합해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25년간 이어져온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들의 지적은 차치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을 갖고 천천히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기존의 초단기 일괄 타결식 비핵화 대신 북한의 단계적 방식을 많이 수용한 뉘앙스다. 북·미 회담은 과정의 시작이며 무엇인가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핵심 사안에서 여전히 의견을 좁히지 못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의 종전선언 추진 발언도 북·미 회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여러 차례의 회담 언급은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북핵 협상을 국내 정치용으로 계속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회담 결과보단 성사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탓에 이번 회담이 상징적 비핵화 선언에 머물 수도 있을 것 같다.
북·미 정상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이벤트이긴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합의 내용이다. 합의의 본질은 누가 뭐래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비핵화 선언을 했더라도 이행 단계로 접어들면 실패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합의에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실패 사례를 제대로 학습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비핵화 선언과 함께 초기에 핵 동결을 뛰어넘는 폐기 절차가 시작돼야 한다. CVID가 빠진 정치적 퍼포먼스로 일관하는 회담을 한다면 전 세계의 차가운 시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제재 완화나 보상을 말할 단계가 아니라 실체적 행동을 통해 먼저 진정성을 입증하라고 북한을 압박할 때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빅딜을 위해 한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주고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계의 고삐를 늦춰선 안 된다. 밀도 높은 한·미 공조를 통해 한국의 안보 이익이 철저히 보장되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물론 북·미 간 타협을 촉진하는 중재자 역할은 계속해야 한다.
[사설] 트럼프, ‘25년 실패 반복하고 있다’는 고언 되새겨 보길
입력 2018-06-05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