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스름한 조명이 은근하게 깔려 있는 어두운 공간, 한 발짝만 들어서도 한기가 스밀 것만 같은 곳.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실 모습은 이렇다. ‘한국판 CSI’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생생한 법의학 현장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장소인 동시에 사건사고 피해자들의 아픔과 슬픔이 깃든 곳을 현대적으로 구현해냈다.
괴짜 법의학자 백범(정재영)과 초짜 검사 은솔(정유미)이 티격태격하며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는 게 ‘검법남녀’의 기본 줄기다. 국과수 부검실과 연구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국과수는 드라마가 다루는 이야기에 색깔을 입히고, 캐릭터들의 감정에 힘을 부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4일 경기도 용인시에 꾸려진 ‘검법남녀’ 국과수 세트장을 찾았다. 곳곳에 배치된 각종 실험 도구들, 집중력을 높여주는 조명, 푸른빛이 감도는 차가운 분위기는 국과수 법의학자들이 갖춰야 할 과학적 냉정함과 치밀함을 반영하는 듯하다. 드라마를 위해 꾸며진 국과수는 현실의 국과수와 얼마나 닮았을까.
세트장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노도철 PD는 “현실의 국과수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등) 여러 가지를 참고해서 창조해낸 것”이라며 “현대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주기 위해 조명과 소재, 인테리어 구성 등에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드라마 속 국과수의 통유리, 높은 천장 등은 몰입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구현해 낸 드라마적 장치들이다. 현실의 국과수는 드라마보다 훨씬 관료적인 느낌을 준다. 다만 세트장 한쪽 벽에 걸린 ‘죽음을 입증하라(PROBA MORTEM)’는 라틴어 문구 등은 현실의 국과수에서 고스란히 옮겨 왔다.
정교하고 세련되게 구성된 세트장인데 3주 동안 뚝딱 만들어냈다고 한다. 노 PD는 “이 정도 규모의 세트장을 만들려면 두 달은 있어야 한다. 미술팀이 고생 많았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높이는 데는 부검실 시신도 한몫한다. 사건사고 해결의 실마리를 품고 있는 시신의 모습을 꽤나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술팀의 시신 모형 작업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에 노 PD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배우들이 특수 분장을 하고 연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우들이 불편한 분장을 하고 몇 시간 동안 꼼짝도 않고 누워 만들어 낸 장면들인 만큼 생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세하게 드러나는 호흡이나 얼굴의 움직임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교정한다고 한다.
미드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늘면서 장르물에 대한 수요도 많아졌고 눈높이도 올라갔다. ‘검법남녀’는 완성도 높은 전개로 이런 수요를 충분히 충족시켜주고 있다. 하지만 현실감 있는 시신의 모습과 백범이 법의학적 추론을 하면서 범죄 현장을 상상하는 장면들에 불편해하는 시청자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백범 역의 정재영은 “괴팍한 성격의 법의관이다 보니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도 나오는 것 같다. 식사하면서 보실 드라마는 아니다(웃음). 캐릭터의 몰입감을 위해 필요하다고 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용인=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죽음을 입증하라”… 손색없는 ‘한국판 CSI’
입력 2018-06-05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