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한국 많고, U턴은 적고… 시련의 中企

입력 2018-06-04 05:05

매출 402억 가방 제조업체, 美·中 마찰로 수출 막히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된서리 … 결국 동남아로 이전하기로
U턴기업 지원책 차일피일… 수출 中企 ‘이중고’ 한숨만


가방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국내 공장의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 1996년 설립된 A사는 해외 명품 가방 등을 주문 제작해 공급하고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A사의 2016년 연간 매출액은 402억원, 당기순이익은 20억원에 달했다.

크게 두 가지 상황이 철수를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시발점은 미·중 무역 갈등이다. 양국의 기 싸움 때문에 주력인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납품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 생산 물량을 국내에 있는 공장으로 돌리려니 이번에는 최저임금 인상 파장에 직면했다. 인건비를 포함해 각종 비용 증대로 단가를 맞추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결국 A사는 국내 공장 대신 동남아에 신규 공장을 설립한다는 선택지를 택했다.

미·중 무역 갈등과 최저임금 인상이 A사와 같은 수출 중소기업에 ‘이중고’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에 제조 공장을 둔 중소기업들은 미국 수출길이 막혀 대안을 찾는 데 절치부심이다. 그렇다고 국내로 다시 공장을 가져오는 ‘유(U)턴기업’이 되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올해 시간당 7530원(16.4%)으로 인상된 최저임금을 비롯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각종 비용이 부담이다. A사처럼 아예 한국에 있던 제조업 기반마저 정리하고 떠나는 경우도 나온다. 고용 증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악재다.

비단 A사만의 인식이 아니다. 해외로 이전한 기업이 돌아오는 경우는 최근 들어 대폭 줄었다. 3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한국에 돌아오겠다고 밝힌 중소·중견기업 수는 92곳이다. 2년 이상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곳 중 지자체와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기업을 추렸다. 연도별로 보면 2012∼2016년에는 연평균 17곳이 유턴기업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3곳, 올해는 4곳만 돌아오겠다는 뜻을 밝혔다. 5∼7년간 50∼100%의 법인·소득세를 감면해주는 등의 유턴기업 지원제도 자체는 2012년 당시와 그대로다.

실제로 돌아오는 기업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산업부에서 유턴지원법에 따른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기업은 기존에 의사를 밝힌, 즉 MOU를 체결한 92곳 중 46곳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최근 들어 더 줄어드는 추세다. 2016년에는 12곳의 기업이 유턴지원법의 수혜를 받았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4곳이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산업부는 “유턴 대기수요의 축소 등에 따라 유턴기업이 감소하고 있다”고 원인을 분석했지만 업계의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다.

정부가 유턴기업 정책에 미온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7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유턴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기업만큼 큰 폭의 지원을 하겠다는 게 골자다. 방향은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지금까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국 기업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만들도록 노력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인데 한국만 예외”라며 “기업들이 국내에서 투자하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