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당시 마흔 살 동갑내기 부부였던 이헌주(53) 목사와 김은영 사모는 산부인과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아무래도 태아가 다운증후군인 것 같습니다.” “아니, 둘째 아이가 뇌병변 장애1급인데 또다시 장애라니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술 날짜를 잡겠습니다.”
집에 돌아온 이 목사 부부는 목 놓아 울었다. 가난한 목회자의 아들로 자란 이 목사는 둘째 딸의 장애를 계기로 경기도 성남 샘물교회에서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딸을 뒷바라지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셋째마저 장애라니 죽을 것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하나님, 제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이런 분이었습니까. 모든 부귀영화 내려놓고 장애인을 돌보는 저에게 또다시 장애인을 자녀로 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낙태수술 날짜를 잡았다는 소식에 이 목사의 부친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 아이를 죽이려면 이 아비도 죽여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네가 어떻게 함부로 짓밟으려는 것이냐.” “아버지는 장애인을 돌보는 고통을 잘 모릅니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부친의 간곡한 호소에 부부는 고개를 떨궜다. 깊은 기도 후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 저 아이가 비록 장애를 지녔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
결국 수술을 취소했다. 배 속의 아기는 어느덧 열두 살짜리 초등학생이 됐다. 유상이는 지능지수가 40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부와 두 누나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가정의 활력소다.
3일 경기도 성남 말아톤복지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 목사는 13년 전 일을 회상하며 비정한 인간의 죄성과 본성에 대해 얘기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사였지만 나 역시 장애라는 공포가 닥치니 아들을 죽이겠다는 악한 본성이 튀어나왔어요. 그때 만약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이 목사 부부의 결단은 생각보다 큰 여파를 남겼다. 예상치 못한 ‘열매’를 맺은 것. 당시 낙태수술을 진행하려던 산부인과 의사는 이 목사의 행동에 큰 도전을 받고 다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장애아 임신판정을 받은 한 성도는 유상이의 이야기를 접하고 수술을 포기했다. 낙태수술 하루 전에 내린 결단이었다. 그런데 훗날 기적적으로 비장애아가 태어났다.
이 목사는 “요즘 유상이를 쓰다듬어주면서 ‘네가 여러 사람을 살리고 있다’며 칭찬해준다”면서 “죽음의 위기까지 갔던 아이가 정말 여러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있다”며 웃었다.
중학교 교사인 아내 대신 자녀를 돌보는 이 목사의 하루 일과는 빡빡하다. 등하교는 물론 집안 청소, 빨래 등 집안 대소사가 모두 그의 몫이다. 그는 “장애를 지닌 두 아이를 돌보는 게 육체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며 “장애인 자녀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공동체가 절실하다”고 했다.
이 목사는 낙태 이슈 앞에 교회가 정죄보다는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낙태죄 폐지 여론이 힘을 얻는 것은 생명에 대한 무지, 다른 생명에 대한 무관심, 자기중심적 사고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라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태아의 인권이야말로 진짜 인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한국교회는 미혼모의 임신, 장애아 임신, 심지어 불륜에 의한 임신이라 할지라도 배 속에 생명이 생기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다는 절대적 믿음과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2010년부터 말아톤복지재단 상임이사로 일하는 이 목사는 현재 11개 장애인시설에서 100여명의 ‘생명’을 돌보고 있다.
성남=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목사였던 나도 악한 본성 나와, 그때 잘못 결정했더라면… 아찔”
입력 2018-06-04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