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vs 김명수… 신·구 사법권력 정면 충돌

입력 2018-06-01 18:28 수정 2018-06-03 17:18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경기도 성남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는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고 말했다. 성남=권현구 기자

梁, ‘사법 농단’ 정면 반박
“재판 거래, 꿈도 못 꿀 일, 반대 법관 불이익도 안줘…왜곡된 사실 무차별 전파”

金, 전국 판사에 이메일
“사법부 신뢰 무너지는 충격, 사찰 대상 법관 깊은 위로…잘못된 관행·문화 바꿀것”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조사 파장이 신·구 사법권력의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 의혹을 공개적으로 반박하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찰’ 의혹을 사과하는 글을 전국의 판사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서로 상대편이 현재의 사법부 혼란을 부른 장본인이라고 지목하는 상황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1일 경기도 성남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왜곡된 사실이 전파되고 있다”며 특별조사단의 발표 내용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으로 재직할 때 대법원 재판이든 하급심 재판이든 부당하게 간섭 또는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다”며 “하물며 재판을 무슨 흥정거리로 삼아서 그걸로 거래를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그 재판을 한 법관들에게 심한 모욕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도 전면 부인했다. 상고법원 도입 등 대법원 정책에 반대를 하거나 재판에서 특정 성향을 보였다는 이유로 해당 법관들에게 편향된 조치 및 인사상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두 가지(재판 부당 관여·비판적 판사 불이익이 없었음)는 제가 양보할 수 없는 한계”라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금 사법부에 대해 더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려는 목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면서도 현 사법부 수뇌부를 겨냥한 불만이나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대법원 재판 전체를 의심받게 한 적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거듭된 과거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한 조사와 편향된 발표가 사법 불신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각에서 대법원이 어떤 목적을 위해 재판을 왜곡했다는 걸 기정사실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그렇게 함부로 (재판을) 폄하하는 건 견딜 수 없다”고도 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전국의 법관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내부 메일을 보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기자회견 1시간여 뒤였다. 김 대법원장은 “특조단 조사 결과는 수많은 법관이 헌신하며 지켜온 자긍심과 국민들께서 사법부에 보내주신 신뢰가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사찰과 통제의 대상이 됐던 법관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강한 의혹 부인에도 불구하고 법관 사찰 등 부당한 사법행정권 행사가 존재했음을 전제로 한 얘기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의 양심을 동력으로 삼아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며 지속적인 개혁 드라이브도 공언했다.

정치권도 공방에 가세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제4차 중앙선거대책위 회의에서 “(이번 의혹은) 사법부의 근간을 흔드는 ‘사법농단’으로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버금가는 중대한 범죄”라며 “국회의 국정조사는 물론 특검 조사를 통해 사법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철저한 진상 규명과 검찰 수사를 통한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사태를 파악하고 있고 구체적인 당 입장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주장하는 특검과 국정조사 모두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지호일 노용택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