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를 줄인 신조어다. 듣고 싶은 대답을 미리 정해놓고 빙빙 돌려서 말하는 사람을 두고 답정너족(族)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답정너족은 이런 사람이다. 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에 “퇴근들 안하나 난 오늘 야근이네”라고 하는 직장 상사. 중국집에 점심 먹으러 가서는 “먹고 싶은 거 마음껏 시켜 난 짜장면”이라고 하는 부장.
문재인정부는 현재 중학교 3학년이 2021년에 치를 2022학년도 대입제도를 만들고 있다. 오는 8월 말 결론이 나오는데 ‘교육부→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회→공론화위원회→일반 시민’으로 이어지는 연쇄 하도급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게 특징이다.
이 가운데 공론화위에서 일반 시민으로 넘겨지는 대목을 공론화 과정으로 부른다. 일반인 2만명을 먼저 뽑고 그중에서 400명을 골라 7월 시민참여단을 꾸린다. 그러고는 한 달여 속성 과외로 대입 제도를 공부시켜 결정하도록 하는 게 공론화의 골자다. 이런 번거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국민이 원하는 대입제도’를 찾겠다는 것이 명분이다.
국가교육회의가 31일 복잡하고 다양한 대입 쟁점들 중에 일반 시민에게 맡길 사안을 정했다. ‘공론화 범위’라고 부른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할지 말지도 공론화 범위에 포함됐다. 지금처럼 상대평가를 유지할지 절대평가로 바꿀지 시민참여단에게 묻고 정하겠다는 얘기다. 수시와 정시 모집의 적정 비율도 정하도록 했다.
교육부는 당초 절대평가 전환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국가교육회의에 요청하면서 절대평가의 부작용을 줄일 보완책도 부탁했다. 수능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면 주요 대학들은 정시 모집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수능 변별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동점자에 한해 원점수를 제공하면 변별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봤다. 절대평가로 가더라도 정시가 급격하게 줄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달았다고 이해하면 쉽다.
국가교육회의는 교육부가 절대평가에 달아놓은 브레이크를 제거하고 순수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중에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시민참여단 400명 가운데는 상대평가를 지지할 사람도 절대평가 전환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국가교육회의 결정은 절대평가를 선호하지만 부작용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들의 선택지를 없애버렸다. ‘원점수를 준다면 절대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여지를 없앤 것이다. 상대평가란 답을 두고 일반시민에게 묻는 절차만 남은 셈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공론화일까.
이도경 사회부 기자 yido@kmib.co.kr
[현장기자-이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 공론화 꼼수’
입력 2018-06-0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