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극장가는 ‘여풍당당’

입력 2018-06-04 05:00
거액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려는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물 '오션스8'. 천재 발명가이자 배우였던 헤디 라머의 생애를 그린 '밤쉘'. 위안부 할머니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법정 투쟁을 소재로 한 '허스토리' 장면(위쪽부터). 각 배급사 제공

시리즈 사상 첫 여성 캐릭터 중심 … 범죄액션물 ‘오션스8’
여성 위인의 삶 다룬 다큐 ‘밤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조명한 한국영화 ‘허스토리’ 등 다채


이토록 다양한 여성 영화들이 한데 선보여지는 것이 과연 얼마만이던가. 남성 주인공이 세상에 맞서 끝끝내 승리하는 식의 익숙한 서사는 이제 사양한다. 6월, 여성이 스크린의 중심에 섰다.

장르부터 다채롭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범죄액션물(‘오션스8’)부터 여성의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꼬집는 코미디물(‘아이 필 프리티’), 위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밤쉘’), 여성 인권 투쟁 실화를 그린 드라마(‘거룩한 분노’)까지 알차게 준비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조명한 감동 스토리(‘허스토리’)와 여성 원톱 액션물(‘마녀’)도 이목을 끈다.

‘오션스8’(13일 개봉)은 케이퍼 무비(Caper Movie·범죄 모의와 실행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장르의 한 획을 그은 오션스 시리즈의 신작이다. 미국 뉴욕 최대 패션쇼 멧 갈라에 참석하는 톱스타(앤 해서웨이)의 1500억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기 위해 결성된 범죄 전문가들의 활약을 그린다.

3부작으로 구성된 전편들이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등 남성 배우 중심의 스토리를 펼쳤다면 ‘오션스8’은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여성 캐릭터들로 극을 구성했다. 샌드라 불럭과 케이트 블란쳇을 필두로 민디 캘링, 사라 폴슨, 리한나 등 할리우드 정상급 여배우들이 뭉쳤다.

‘아이 필 프리티’(6일)는 여성의 외모 기준을 규격화하는 사회의 ‘코르셋’을 힘차게 비웃어주는 작품이다. 통통한 몸매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주인공 르네(에이미 슈머)가 어느 날 사고로 머리를 다친 이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내용. 과거의 소심함을 버리고 당차게 일과 사랑을 쟁취해내는 르네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적잖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밤쉘’(7일)은 1940년대 최고의 섹스 심벌로 군림한 스타이자 근대 통신기술의 혁신을 이끈 천재 발명가 헤디 라머(1914∼2000)의 생애를 다룬다. 대중은 그의 아름다운 외모만을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오늘날 널리 쓰이는 ‘와이파이’의 핵심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였다. 이 영화를 제작한 배우 수잔 서랜든은 “라머가 이 시대 여성들에게 전하는 강한 메시지에 끌렸다”고 말했다.

‘거룩한 분노’(28일)는 서구사회 중 가장 늦은 1971년에 주민투표를 통해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스위스 한 마을의 이야기다. 조용한 일상을 살아가던 여성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하나둘 용기를 내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단순히 여성 참정권을 향한 투쟁의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금기시됐던 여성의 성(性)을 유머러스한 통찰로 담아내는 등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강조한다.

한국영화 가운데도 반가운 작품들이 눈에 띈다. 먼저,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등 베테랑 여배우들이 의기투합한 ‘허스토리’다. ‘관부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는 1992년부터 6년간 10명의 할머니 원고단이 23회에 걸쳐 일본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정부를 상대로 벌인 끈질긴 법정 투쟁을 담는다. 원고단 단장 문정숙 역의 김희애는 “기적과 같은 역사적 실화를 다룬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깊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세계’(2012) ‘브이아이피’(2017) 등 남성 누아르를 주로 만들어 온 박훈정 감독도 신작 ‘마녀’에서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웠다.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의문의 사고에서 살아남아 기억을 잃고 살아가던 소녀 자윤(김다미) 앞에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 액션물. 얼굴도 이름도 생소한 신예 김다미가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연으로 전격 발탁돼 기대를 모은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