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물론 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가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했고, 이미 한국기독교장로회도 독립을 선언하는 등 갈등도 있었다. 다만 분열의 아픔이 오히려 성장으로 이어진 건 아이러니컬한 현실이었다. 당시 선교사들의 활동도 활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회가 자리를 잡자 사역을 이양하고 떠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 결실로 64년 예장 통합 총회를 비롯해 미국과 호주 선교사들이 ‘협동사업부’를 만든다.
이후 84년까지 20여년간 이 조직은 사역의 이양을 위한 활동을 벌인다. 교회와 총회, 연합기관의 리더십을 한국인에게 넘기는 일부터 했다. 또한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던 선교부 소유의 재산을 한국교회에 주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서울 종로구의 예장통합 본부와 여전도회전국연합회관 등이 모두 선교사들에게 받은 부지에 세워진 건물들이다. 이때 선교계에선 ‘선교 동역자(mission co-worker)’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선교사(missionary)가 일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역할이었다면 선교 동역자는 선교지 교회와 협력하며 사역하는 걸 의미했다. 선교사와 선교지 사이에 협력이라는 개념이 비로소 생겨난 것이었다.
과거 선교지에서 협력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미국의 교회가 최근 황당한 일을 겪고 있다. 오는 16일부터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223차 총회를 여는 미국장로교(PCUSA) 총회에 상정된 헌의안 때문이다. 헌의안이란 노회들이 총회 석상에서 다루기 원하는 안건을 말한다. 2개 노회가 동일한 내용으로 제출한 안건의 골자는 “과거 미국장로교가 북한에 가지고 있던 재산을 환수하자. 공산당이 가져간 재산을 되찾자”는 것. 분단된 지 65년, 심지어 한국교회들도 주장하지 않는 걸 미국교회가 들고 나온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있기는 했다. 헝가리와 체코 정부가 공산주의 시절 몰수했던 교회 재산을 다시 돌려준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그 나라 안에서 정부와 교회 사이에 있었던 일로 이번 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정간섭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직 공론화되기 전이지만 비난의 화살이 빗발치고 있다.
문득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 단편의 내용이 떠오른다. 주인공 ‘파홀’은 드넓은 대지에 영역을 표시한 뒤 해 지기 전까지 돌아오면 땅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길을 떠난다. 쉬지 않고 영역을 표시한 그는 약속대로 해 지기 전 출발점에 돌아오지만 무리한 나머지 목숨을 잃고 만다. 그의 장례에 필요한 땅은 고작 180㎝ 남짓. 소설은 인간에게 필요한 땅이란 사람이 누울 정도면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미국장로교 총회에 ‘낯선 헌의안’이 올라온 이면엔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사정이 있다는 후문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미국교회의 과욕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일이다. 협력과 동반자 선교, 나눔과 배려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과거 선교지에 있던 재산을 돌려받자는 요구, 과연 필요한 일인지 다시 고민해 볼 일이 아닐까.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교회 톺아보기] 美장로교 총회 ‘낯선 헌의안’
입력 2018-06-02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