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국민께 사과… 준엄한 꾸짖음 피하지 않겠다”

입력 2018-05-31 18:51 수정 2018-05-31 21:32
김명수 대법원장이 3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병주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31일 “국민의 준엄한 평가와 꾸짖음을 피하지 않겠다”며 대국민 담화문을 전격 발표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 거래 의혹이 공개된 지 6일 만에 나온 공식 입장이다.

김 대법원장은 옛 ‘양승태 행정처’ 관계자를 강하게 징계하겠다고 했다. 의혹 관련 문건을 추가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등을 형사고발하는 문제는 최종 입장 발표를 미뤘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4시 서면으로 발표한 담화문에서 “심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오전 9시 출근길에선 “결론을 정하기 위해 심사숙고 중”이라고만 했다. 발언 7시간여 만에 담화문을 낸 건 사법부 전체가 아노미 상태로 치닫는 형국을 봉합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이 섰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대법원장은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징계를 신속히 진행하고 조사자료 중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공개하는 것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과 행정처를 인적·물적으로 완전히 분리하고 행정처를 대법원 청사 외부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법원 내외의 압력을 예방할 수 있는 ‘법관독립위원회’를 설치하고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의 인적 구성도 외부에 개방한다는 방안도 내놨다. 행정처의 ‘탈(脫)법관화’를 추진해 사태 재발을 막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등 옛 행정처 판사들 고발 여부는 결정을 유보했다. 김 대법원장은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대법원이 형사조치를 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의 의견을 종합한 뒤 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전임 대법원장들은 판사의 금품수수 비리 문제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공식 사과한 건 김 대법원장이 처음이다.

김 대법원장의 담화가 이번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김 대법원장이 형사고발과 관련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건 검찰 수사를 수용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원 외부 인사로 꾸려진 사법발전위원회와 고위 법관인 법원장, 소장 법관들이 모인 법관대표회의의 의견에는 온도차가 예상된다. 의견이 엇갈린다면 김 대법원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사법부 내홍이 쉽게 봉합되지 않을 수 있다.

김 대법원장이 수사 대응과 관련한 별도 조직을 만들어 전권을 위임하고 본인은 손을 뗄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이 일선 법관 의견을 수렴해 결정을 내린다고 했지만 본인이 결정 주체가 되는 순간 검찰과 법원 모두를 향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며 “독립된 기구를 만들어 검찰의 강제 수사 내지 자료제출 요구 등을 맡기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행정처 문건을 전면 공개해야 한다는 안건을 놓고 29일부터 찬반 투표를 벌이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공동성명을 내고 “사법부는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등에게 즉각 사죄하고 장기간 계류된 사건을 신속히 판결하라”고 촉구했다.

양민철 손재호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