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63)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한국 월드컵사의 산증인이다. 한국이 32년 만에 본선에 오른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2대 3으로 석패한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추격골을 터뜨렸다. 90년 이탈리아, 94년 미국월드컵 때는 각각 트레이너와 코치로 참가했고, 이후 두 차례 월드컵(1998·2002)에선 해설위원이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지휘봉을 잡고 한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행을 이끈 것도 허 부총재였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4년 전 브라질 대회 때는 한국 대표팀 단장을 맡았다.
31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만난 허 부총재는 “대표팀에서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공백을 메우는 선수들이 있어 희망적”이라며 “조별리그 통과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오는 14일 열리는 러시아월드컵에 나설 태극전사들을 격려했다.
‘조별리그서 3전 3패가 될 것’이라며 ‘신태용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데 대해서도 허 부총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한국이 9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하는 동안 강팀을 만나지 않은 적이 있느냐”고 반문한 뒤 “역대 월드컵에서 만난 강팀과 비교해보면 스웨덴, 멕시코는 전략을 잘 세우고 충분히 준비해서 넘어볼 수 있는 상대”라고 역설했다.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스웨덴, 멕시코, 독일 순으로 맞붙는 것도 긍정적으로 봤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인 독일이 3승을 거둔다고 가정하면 스웨덴이나 멕시코도 한국을 상대로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 부총재는 “첫 상대인 스웨덴이 한국을 상대로 반드시 승리하려고 하는 점을 역이용해 차분히 경기를 풀어나가면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스웨덴전을 이기면 2차전 상대인 멕시코도 마음이 급해진다. 그동안 멕시코와 수차례 맞붙었던 경험을 앞세워 저력을 발휘할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허 부총재는 원정 첫 16강에 오른 남아공월드컵을 거론하며 신태용호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팀이라면 신구조화는 당연한 것”이라며 “2010년 당시 중참 박지성이 대표팀 주장이었지만 위아래 선후배들이 헌신하고 하나로 뭉쳤다”고 말했다. 이어 “신태용호가 부상자 속출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 공백을 메우는 선수들이 나오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당장 처한 상황만 보고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신태용호는 지난달 28일 온두라스 평가전에서 2대 0으로 이겼다. 허 부총재는 “승패를 떠나 대표팀 선수들과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준 경기였다”며 “한국은 어려운 시기에 항상 깜짝 스타가 나오곤 했다. 이승우 문선민의 활약이 월드컵 변수이자 팀의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수비 불안 문제에 대해서 허 부총재는 팀 조직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월드컵 때마다 수비 걱정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그는 “수비 출발은 스트라이커, 공격의 시발점은 골키퍼라는 말이 있다. 유기적인 팀이 돼야 강해지기 때문에 조직력으로 협력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은 월드컵에서 항상 도전자의 입장이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차분한 마음으로 당당하게 즐기고 최선을 다해 도전하면 모두가 박수를 쳐줄 것”이라며 후배들을 응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한국축구는 항상 도전자… 첫판 잡으면 16강 가능”
입력 2018-06-0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