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모(60)씨는 1년 전 아내로부터 이혼하자는 통보를 받았다. 결혼생활 30년 동안 남편의 권위주의에 억눌려 살아왔는데 1남 2녀가 다 결혼한 지금 더는 같이 살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하던 사업이 파산하고 암 진단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결국 이씨는 이런 사정을 다 얘기했고 아내는 고민 끝에 남편에게 교회에서 하는 부부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이씨는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교회에 다시 나가 3개월짜리 부부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니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아내의 꿈을 알게 됐고, 잊었던 나의 소명도 발견했다. 아내와 울고 웃으며 얼어붙었던 부부관계를 녹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응급차 대신 방호벽
가정은 마음의 뿌리를 내려 영양분을 섭취하고, 새 힘을 재충전하는 대지(大地)와 같은 곳이다. 우린 이곳에서 정서와 성품, 인격과 가치관을 형성한다. 한 인간의 성품이 만들어지는 가정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현실은 매우 위태롭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이혼율 1위, 졸혼 비혼 동성애 등으로 가족해체 현상이 심각하다.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최하위이다. ‘어린이 화병’ ‘소아 우울증’ 등 이전에 없던 새로운 병명이 등장하고 마음과 정신이 병드는 연령대가 더욱 낮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기능 가정’을 원인으로 꼽는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면서 생겨난 병이란 것이다.
가정사역가들은 “절벽 밑에 응급차를 대기시킬 것이 아니라 절벽 위에 방호벽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가정의 해체는 청소년 문제뿐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해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교회가 태아교육 세미나, 미혼자학교, 결혼예비학교, 신혼부부학교, 중년부부 가정훈련학교,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 싱글학교 등 생애발달에 맞는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가정사역이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제도의 원리와 목적을 가르치고, 부부가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돕는 사역을 의미한다. 국내에 가정사역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양은순(미국 히즈대학 총장)씨가 1985년 풀러신학교에서 가정사역 전공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영어의 패밀리미니스트리(Family Ministry)를 한국문화를 배경으로 의역해 소개하면서부터다.
가정은 작은 교회, 교회는 큰 가정
한국의 가정사역은 90년대 초반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서울 동부이촌동 온누리교회는 91년 10가정으로 구성된 가정사역위원회를 조직했다. 1년 반 동안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이 교회 전체를 이끌어갔다. 93년 ‘하나님의 가정훈련학교’를 시작으로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확산시켰다. 95년 시작한 ‘두란노아버지학교’는 범사회운동으로 퍼져 비신자들에게 다가가는 선교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외에 현재 가정사역 전담부서를 두고 사역을 펼치는 대표적인 교회는 지구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높은뜻광성교회 오륜교회 신반포교회 응암교회 분당만나교회 분당우리교회 안산제일교회 대전새로남교회 인천주안교회 광주월광교회 부산수영로교회 등 20여곳에 이른다.
한국가정사역협회 이희범 회장은 “가정사역 부서(위원회)를 교회에 두고 정기적인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회는 전국 교회를 대상으로 한다면 5%도 안 된다”며 “일대일 상담과 단기 상담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교회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 목회자들이 가정사역의 필요성을 선택에서 필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이패밀리 김향숙 공동대표는 21세기 새로운 가정사역의 방향으로 ‘자립형 가정사역’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자립형 가정사역이란 조직, 콘텐츠, 강사를 교회가 자체적으로 갖추고 성도들의 가정을 직접 돌보는 형태를 말한다”며 “생애 발달단계를 따라 체계적이고 연속적인 가정사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외부강사 초청이나 일회성 세미나로는 가정회복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립형 가정사역’ 방법
자립형 가정사역을 시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교회는 가정사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사람을 키우면 가정사역을 시작할 수 있다. 교회에서 영적 어머니 역할을 하는 사모를 가정사역자로 세우는 것도 대안이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 무학교회(김창근 목사) 전경숙 사모의 경우 목회를 돕기 위해 상담학을 공부했다. 그는 무학교회의 대표적인 가정사역 프로그램 ‘마더와이즈’ ‘부부학교’를 인도하고 있다. 마더와이즈는 미국의 드니스 글렌이 만든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교회 상황에 맞게 토착화한 프로그램이다. 전 사모는 “청년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의 여성이 참여한다. 이혼을 앞둔 가정이 회복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사랑의 부부학교’는 남편 김창근 목사와 함께 강의한다.
교회에서 자체 개발이 어려운 경우 전문기관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먼저 목회자 부부가 가정사역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함께 훈련받고 가정사역의 방향을 설정한다. 이후엔 가정사역에 관심 있는 성도들로 가정사역위원회를 구성한다. 이들을 모범적인 가정사역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나 교회에 파송해 훈련받게 한다. 전문 기관의 협조를 받아 자체적으로 일정기간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이어서 교회는 가정사역위원회 헌신자들이 준비되면 교회 예산을 편성하고 지원자를 모집해 교육을 실행한다. 연중 2회 정도 헌신자 훈련을 통해 사명감을 고취하는 일도 중요하다. 또 사역을 시작하기 전, 믿지 않는 배우자를 두거나 싱글인 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해체 위기 가정 구하기 가정사역에 답 있다
입력 2018-06-02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