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 공부 모임을 만든 지 올해로 18년, 온라인을 기반으로 소통하는 가운데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마주 보고 공부하는 오프라인 모임이 어느새 205회를 기록했다. 다들 노인복지 현장에서 바쁘게 일하는 처지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렵다 보니, 쫓기는 마음 없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 모두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돈을 모아 다른 나라 노인복지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자는 의견이 더해져서 지난해 11월부터 단체통장을 개설해 꼬박 7개월 동안 돈을 모았고, 드디어 32세에서 59세까지 골고루 섞인 16명이 최근 2박3일 일정으로 일본 연수에 나섰다.
일행이 견학한 곳은 일본에서도 앞서간다는 ‘지역밀착형 노인생활시설’이었다. 그중에서도 운영의 유연성이 돋보이는 시설이 단연 관심을 모았다. 데이케어센터(day care center,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어르신이 숙박을 원하면 얼마든지 그곳에 마련된 방에서 주무실 수 있었다. 또 아예 거처를 옮겨 시설에 들어와 살다가도 당신 살던 집에 다시 가서 좀 살아보고 싶다고 하면 자유롭게 가되, 시설이든 집이든 그 어르신을 돌보는 담당자가 바뀌지 않고 돌봄을 받을 수 있었다. 노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무언가를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혼자서는 도저히 일상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요양원도 돌아봤다. 어르신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요양원 어르신들과 비슷했지만 예산이라든가 시설과 설비, 돌봄 체계는 차이가 컸다. 견학을 마치고 나서 누구는 부러워서 속이 쓰리다 했고, 또 다른 누구는 제도의 문제인지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나라의 사례도 귀하지만, 좀 더 나은 방향과 돌봄 방법을 고민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격려하고 서로 지지하자는 이야기에 가슴이 묵직해지기도 했다.
나이 들어 어디에 살지는 노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다. 그동안 살던 지역에 그대로 머물지, 새로운 곳으로 옮길지 우선 생각해 봐야 한다. 익숙한 지역,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면 새로 적응할 필요도 없고 낯선 사람과 다시 관계를 맺어야 하는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집의 크기나 살림 규모가 줄어든 수입과 맞지 않을 수 있고, 집 안의 구조나 설비가 불편하거나 위험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내게 맞는 복지서비스가 있고 이용시설이 가까운 곳으로 아예 옮길 수도 있다. 노인복지관 근처로 이사하니 편리하고 좋다는 어르신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은 혼자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때가 온다. 닥쳐서 대응하려면 가족 간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과 불화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노인의 입장에서도 본인의 뜻과 달리 자식들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게 되면 불안과 서운함이 앞서게 되고 따라서 적응하는 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디서 누구와 살지 미리 생각해 둬야 한다. 나중에 그때 가면 무슨 수가 생기겠지, 그때 가서 적당히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은 노년준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님의 집에 뿌리를 내렸으니, 우리 하나님의 뜰에서 크게 번성할 것이다. 늙어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진액이 넘치고, 항상 푸르를 것이다.”(새번역, 시편 92:13∼14)
▒ 노년 삶의 자리 고민할 때
하나, 어디서 누구와 살지 고민하자
살던 지역에 그대로 머물 것인지, 노년에 맞는 복지서비스와 경제성이 있는 주거지로 옮겨갈 것인지 미리미리 생각하자. 또한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을 때 돌봄이나 간호를 자녀에게 맡길 것인지, 아니면 전문적인 시설에 의탁할 것인지 결정해 둘 필요가 있다.
둘, 집과 시설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자
‘무조건 집이 최고, 요양원은 가서는 안 될 곳! 집에서 모시는 게 효도, 시설에 모시면 불효!’ 언제까지 이런 이분법에 매여 현실을 외면할 것인가. 집이라고 무조건 안전하고 행복한 건 아니다. 노인 낙상사고는 주로 집 안에서 일어나며, 아무리 가족과 함께 산다 해도 하루 종일 바깥생활에 집에 와 제대로 눈 한 번 맞추지 않는다면 홀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안전사고 위험과 자기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노인에게는 전문적인 돌봄이 제공되는 시설이 또 다른 좋은 선택일 수 있다. 물론 노인을 돈으로 생각하며 함부로 취급하고 위해를 가하는 시설을 제대로 걸러내고 관리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셋, 공동체 정신으로 해결하자
사는 동안 그 누구와도 연결돼 있지 않고 마지막 떠나는 길마저 아무도 모르게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없이는 모든 세대가 각기 외롭고 힘든 현실을 이겨나갈 방법이 없다.
다른 나라의 지역밀착형 노인시설이 잘 운영되는 것 역시 이웃 주민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고 어린이들이 하교하면서 들어와 숙제하고 가는 자연스러운 공동체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요양원을 혐오시설이라고 부르며 무턱대고 거부할 때 결국은 나의 삶의 자리 역시 그 어디에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유경(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100세 시대 ‘나이 수업’] 노년에 어디서 누구와 살지 미리 생각을
입력 2018-06-02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