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대법원이 고발해야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가능”

입력 2018-05-30 20:18 수정 2018-05-30 22:03

특조단 보고서 분석 돌입, 시민단체 고발장은 여러 건 접수
판사 개인 비리 수사 아닌데다 “위법 아니다” 보고서도 ‘부담’ 김명수 대법원장이 결단해야


검찰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를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수사를 벌일 만한 범죄 단서를 찾아내고, 수사 방향을 구상하는 준비작업 차원이다. 본격 수사 착수 시점은 대법원이 정식 고발장을 제출하거나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대법원 측이 ‘수사는 검찰 몫’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관련 자료를 100% 제출하고 절차에 따라 수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제대로 수사가 진행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30일까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전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10건 가까이 접수한 상태다. 추가 고발도 여러 건 예고돼 있다.

검찰의 입장은 제3자가 아닌 대법원의 공식 고발이나 수사의뢰 등 조치가 선행돼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 대상이 우리나라 최고 법원과 소속 법관들의 직무상 행위에 대한 불법 여부 규명이라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칫 행정부처 소속 수사기관의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게 검찰의 인식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판사 개인비리나 부패범죄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장기간에 걸친 사법행정 사안을 수사한다는 게 보통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대법원 특조단의 어정쩡한 행보가 수사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조단은 조사보고서에 ‘(관련자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기에 충분치 않은 상황’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형사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함’ 등으로 명시했다. 재판 독립은 침해했지만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처벌할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이다. 특조단은 행정처가 고발 주체가 되면 사건 담당 판사에게 선입관을 줄 수 있어 부적절하다는 뜻도 밝혔다. 서울의 한 부장검사는 “수사 시작도 전에 대법원이 ‘죄가 안 된다’고 가이드라인을 정한 셈”이라며 “이러면 일선 판사가 사법부를 수사하라고 영장을 내주겠나”라고 토로했다.

특조단은 “합리적 범위 내에서 (검찰에)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검찰은 이것 역시 수사 제약 요인이라고 본다. 압수수색영장 집행 등 강제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수사 대상인 행정처가 선택적으로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내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심 관련자 대면조사 실패 등 특조단 자체 조사는 이미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보고서를 보면 특조단이 상당부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검찰은 대법원이 고강도 수사를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뒤에야 ‘액션’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풀이된다. 수도권의 한 검사장은 “대법원은 수사를 받겠다는 건지, 내부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건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스스로 수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고발하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호일 양민철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