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 거래 의혹이 ‘사법 불신’ 파동으로 번지고 있다. KTX 해고 승무원들은 30일 오후 김환수 대법원장 비서실장과의 면담에서 “잘못된 거래로 이뤄진 판결을 바로잡아 달라”며 사법부의 직권 재심을 요구했다. 과거 대법원의 부적절한 행위가 드러났으니 현 대법원이 다시 재판을 해 바로잡아 달라는 주장이다. 김 실장은 “직권 재심이 가능한지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전달하겠다”고 답변했다.
법원행정처 문건에 ‘청와대 흥정’ 대상으로 거론된 사건 관련자들의 고발장도 쇄도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건’ 관련자들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 등 책임자들을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재판의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의혹이 연일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 대법원장은 형사고발 등에 대해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오전 출근길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 대법원장은 “조만간 각급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린다”며 “거기에서 나올 의견과 발표된 조사보고서, 대내외 의견 등을 종합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재판 거래 의혹 재조사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의혹 재조사에 관해선 “현재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안 처장은 “원래 (제기된) 의혹은 법관 뒷조사 문건이 있는지 여부였다”며 “암호를 풀고 (문건이) 나왔기 때문에 조사단 의무는 끝났다”고 말했다.
일선 법관의 견해는 갈라지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인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28일 법원 내부 전산망(코트넷)에 글을 올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상응하는 조치 없이는 사법부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며 “헌정유린 행위자들에게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을 대법원장께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인 차성안 판사와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도 언론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사법부 차원의 형사고발을 촉구했다.
사태를 관망했던 고위 법관들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코트넷에 글을 올려 “법치 행위는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는 행위가 아니다”며 “때로는 멈춤, 머무름이 요구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황병하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행정처 요원(심의관)이 남의 재판과 판결을 갖고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 재판과 판결의 의미가 저하되거나 무시돼선 안 된다”고 했다. 사법 불신 풍토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일선 법관들이 자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에 연루된 ‘양승태 행정처’ 근무자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은 “인사 조치가 가능한 사람의 관여 수준을 문서로 정리해 보고했다”고 밝혔다. 현직이 아닌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은 책임자급 위치였지만 제외된 셈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쏟아지는 양승태 고발장… 번지는 사법 불신
입력 2018-05-30 18:52 수정 2018-05-30 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