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 미술가가 설 자리는 있을까.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겨버린 시대라 머잖아 인공지능 아티스트에 예술가마저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미술과 과학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이에 대해 질문하고 해답을 모색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1960∼70년대 미국 뉴욕을 무대로 활동했던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그룹을 국내 처음으로 조명하는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 또 다른 시작)’전이 그것이다.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선구적으로 이끌어낸 이들의 활동을 작품 33점과 아카이브 100여점을 통해 재조명한다.
‘E.A.T.(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는 1966년 미국의 팝아트 작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로버트 휘트먼, 벨 연구소의 공학자 빌리 클뤼버와 프레드 팔트하우어 등 예술가와 공학자가 예술과 기술 간의 협업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었다. 한때 6000명 이상이 취지에 공감하며 회원으로 가입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포스트모던 무용의 대표자 머스 커닝햄도 이 그룹의 회원이었다.
최고 인기코너는 예술가 장 뒤피의 ‘심장 박동 먼지: 원뿔형의 피라미드’이다. 관람객 심장박동을 청진기로 포착한 뒤, 박동을 증폭시켜 먼지처럼 쌓인 특수 안료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심장박동을 시각화한 셈인데, 빨간색 안료를 사용했기에 마치 붉은 피가 용솟음치는 것 같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봐도 신기한 이 작품은 뒤피가 1968년 공학자 랠프 마르텔 등과 협업한 결과물로, 그해 E.A.T. 공모전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으로 선정됐다.
전시장 복도 천장에는 은빛 풍선이 둥둥 떠 있다. 워홀이 공학자 퀼리버의 기술적 조언으로 1966년 완성한 풍선 오브제 ‘은빛 구름’이다. 떠다니는 전구를 상상했던 퀼리버는 워홀에게 공기를 완전히 밀폐시키는 군용 샌드위치 포장재를 재료로 한 작품을 제안해 함께 완성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의 원형을 보여주는 ‘자석 TV’도 나왔다. 당시 벨 연구소 레지던시에 입주해 있던 백남준이 자석에 관심을 갖다 탄생한 작품으로, TV에 자석을 대면 강력한 자기장으로 인해 화면에 다양한 추상 패턴이 맺힌다.
냉각 장치를 갖춘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놓인 얼음이 녹고 얼기를 반복하는 독일 출신 미술가 한스 하케의 ‘아이스 테이블’(1967), 레이저 기술을 활용한 로버트 휘트먼의 ‘붉은 직선’(1967)도 만날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E.A.T.의 상징 같은 ‘아홉 번의 밤: 연극과 공학’을 보여주는 3섹션이다. 1966년 10월 뉴욕의 한 기병대 무기고에서 선보인 기념비적인 퍼포먼스 작업으로, 수십 명의 예술가와 공학자가 협업해 9일 동안 10개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 이벤트는 현대무용 순수예술 미디어 음악 연극 영화 등의 장르를 수용한 다원예술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내한한 E.A.T.의 줄리 마틴 대표는 “1960년대 미국에서도 아폴로호의 달 착륙을 전후해 과학기술에 대한 기대와 함께 두려움이 혼재했다”며 “E.A.T.는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고 예술가들이 사회적 역할을 더 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고 회고했다. 박덕선 학예연구사는 “미술가가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작가의 생각을 확장시켜 줬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미술이 갈 길에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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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예술가, 일자리 잃을까? 과학을 품을까?
입력 2018-05-3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