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채찍 부대’의 야만… 反푸틴 시위대 무차별 폭행

입력 2018-05-30 05:05
러시아 모스크바의 푸시킨 광장에서 지난 5일(현지시간) 군복을 입은 남성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시위대를 채찍으로 때리고 있다. ‘중앙카자크부대’ 소속인 이들은 모스크바시의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리야 발라모프 인스타그램

지난 5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푸시킨 광장은 수천명의 인파로 가득 찼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우리의 차르(황제)가 아니다’ 시위대였다. 시위대는 야권의 대표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필두로 경찰병력과 대치했다.

시위대 앞에 개구리무늬 군복과 가죽부츠, 털모자를 갖춰 입은 남자 수십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검고 굵직한 채찍을 손에 쥐고 인파를 향해 다짜고짜 휘둘러댔다. 비무장한 시위대는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으며 흩어지다가 경찰에게 붙들렸다. 이날 모스크바에서만 나발니를 비롯해 시위대 703명이 체포됐다.

최근 러시아에서 자경단을 자처하는 무리가 반정부 시위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다음 달 14일 개막하는 월드컵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치안 유지’를 돕겠다는 명분에서다. 영문 일간 모스크바타임스는 러시아 정부가 이 집단을 지원하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자경단 집단은 스스로를 ‘카자크(Cossack)’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카자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서남부 일대에 분포한 민족으로 러시아제국 시절 기마용병으로 이름을 떨쳤다. 자경단 무리는 이를 증명하듯 손에 카자크 전통채찍인 ‘나가이카’를 든 채 활보하고 있다. 실제 카자크족은 아직까지도 거주지역에서 자경단의 전통을 상당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매체 더벨은 이들의 군복에 붙은 엠블럼을 추적한 결과 이 집단이 민간단체인 ‘중앙카자크부대’ 소속이며 모스크바시로부터 1590만 루블(2억7500만원)을 지원받은 바 있다고 보도했다. 자금 지원의 명분은 모스크바 시내에서 진행되는 대형행사의 공공질서와 안전보호였다. 지방정부가 자경단을 육성하고 이들의 난동을 용인한 셈이다.

회원이 1200명에 달하는 이 단체는 월드컵 기간에도 러시아 경찰과 협조해 치안 유지에 나설 예정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보안 당국이 이들의 훈련을 돕는다. 모스크바뿐 아니라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와 볼고그라드에서도 카자크 기마병력 330명이 동원될 예정이다. 두 곳 모두 월드컵 본선 경기가 열리는 주요 도시다.

이들의 등장에 친정부 성향인 극우파 인사들조차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극우 언론인 막심 셰브첸코는 모스크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치안 유지’를 하는지 다들 지켜보지 않았나”라면서 “경찰과 군 병력이 있는데 왜 카자크부대를 동원해야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들 카자크부대가 실제로 카자크족 혈통과 연관이 있는지도 의혹투성이다. 카자크족 출신으로 이들에게 가담했다가 탈퇴한 대학생 미하일 포포로프는 “정부에 등록한 카자크부대 대부분은 카자크 혈통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단순히 군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저지른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