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서 동북쪽으로 70㎞ 떨어진 카상가지 지역. 지난 24일 이양로(57·동두천감리교회) 목사와 한국 월드비전 방문팀은 이 지역 토마토와 옥수수 밭을 찾았다. 말라위는 5월부터 건기에 해당한다. 옥수수는 대부분 수확이 끝났고 허리 높이까지 자란 토마토 줄기엔 동전 크기의 토마토가 달려 있었다. 토마토 줄기를 받치고 있는 흙은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밭 사이에는 작은 고랑이 길게 연결돼 있었고 고랑을 따라 물이 흘렀다. 이 물은 지난달 완성한 태양광 관개시설에서 보내주는 ‘생명수’였다.
말라위 월드비전 직원 티모티씨는 “태양광을 활용해 전기모터를 돌려 인근 강물을 끌어오는 시설”이라며 “전기가 없어도 연중무휴 밭에 물을 댈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 태양광 관개시설은 한국 월드비전의 후원으로 설치됐다. 덕분에 5000여 그루의 토마토 줄기는 무럭무럭 자랐고 그루당 500여개의 토마토 열매를 수확할 수 있게 됐다.
말라위는 주민 78%가 강수(降水)에 의존하는 전통적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만성적 가뭄으로 주민 74.5%가 충분한 식량을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카상가지 지역에 태양광 관개시설이 들어서면서 물 걱정 없이 토마토까지 재배할 수 있게 됐다. 마을 주민 20여명은 이날 이 목사팀을 반갑게 맞이했다. 주민들은 “한국의 지원에 감사한다.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방문팀은 이번엔 친키위리 마을 직업재활센터를 찾았다. 한국 월드비전은 이곳에 재봉틀을 제공해 인근 청소년과 청년들이 재봉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학생 가운데는 남자도 보였다. 말라위 월드비전 카상가지 책임자인 로버트씨는 “재봉기술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배울 수 있다”며 “기술을 배운 학생은 수선집에 취업하든지 직접 가게를 차려 일한다”고 설명했다. 센터에는 창문제작 기술을 가르치는 수업도 진행 중이었다. 파란색 수련복을 입은 청년 10여명이 쇠막대와 플라스틱 막대를 자르고 붙였다.
카상가지는 한국 월드비전이 돕는 지역이다. 어려운 가정의 아동을 결연, 후원하는 것은 물론 대단위지역개발사업(ADP·Area Development Programme)을 통해 마을 전체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 월드비전 관계자는 “ADP는 특정인에게 집중되는 후원과 그로 인한 부작용을 방지한다”며 “지역사회 주민들의 신체 사회 정신 영적 변화를 목표로 하는 통합 개발 사업”이라고 말했다. ADP 사업기간은 평균 10∼15년이다. 장기 지원을 통해 교육과 보건의료, 지역주민의 자립 역량을 강화한다.
로버트씨는 “아프리카는 여전히 부족단위 공동체가 살아있어서 ADP를 위해서는 해당 공동체의 조언을 얻는 것이 필수”라며 “월드비전은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필요를 채운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도 “가난한 마을이 월드비전의 노력으로 변신한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니 전문 NGO의 역할을 실감하게 됐다”며 “우리의 작은 정성과 마음이 말라위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교회 성도들과 함께 힘껏 돕겠다”고 밝혔다.
말라위는 1891년부터 1964년까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774달러이며 평균 수명은 54.8세에 불과하다. 하루 1.25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인구가 전체의 73.9%에 달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다. 종교 분포는 기독교 82%, 이슬람교 13%, 토속신앙 5%이다.
말라위 월드비전 치콘디 회장은 앞서 22일 방문팀과의 만남에서 하나님께서 월드비전을 통해 역사하시는 4가지 사역을 소개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막노동을 하다가 들어온 사람처럼 허름한 옷차림이었지만 겸손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말라위 정부와 교회, 목회자들과 협력해 어린이들의 영양과 보건 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또 깨끗한 물을 공급해 식수와 눈 건강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정 소득증대 사업으로 가난한 주민들을 돕습니다. 학교 교육으로 아이들이 읽고 쓸 수 있도록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카상가지(말라위)= 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 이양로 목사 부부 후원아동 필리피나양 처음 만난 날
사진 속 얼굴 나타나자 감격…친부모 만난 듯 기뻐해
지난 23일 오전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서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렸다. 비포장 산악도로만 2시간. 좌우로 흔들리던 차가 도착한 곳은 체사 지역 품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엔 수백명이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이양로(57) 목사와 백숙현(55) 사모가 차에서 내리자 주민들은 아프리카 특유의 춤과 노래로 환영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 목사 부부는 신기한 표정으로 동네 아이들을 지켜봤다. 잠시 후 아이들 사이로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쑥스러운 얼굴로 나왔다. 모세스 필리피나(12)양이었다. 이 목사 부부가 3년간 후원해 온 어린이였다. 이 목사 부부는 사진으로만 봤던 모세스가 눈앞에 나타나자 감격했다. 모세스도 친부모를 만난 듯 기뻐했다. 모세스는 한국인 후원자의 손을 잡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안내했다.
그녀의 집은 흙집이었다. 지붕은 빛바랜 옥수수 잎으로 덮여 있었고 방은 하나밖에 없었다. 9.9㎡(3평) 남짓한 방에 들어서자 캄캄했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하나밖에 없는 문을 열자 정오의 햇살이 비쳤다. 모세스의 부모들도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이 목사에게 “이런 일이 우리에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모세스는 농사를 짓는 부모의 7남매 중 막내다. 이 목사가 “나 역시 7남매 중 막내”라고 하자 방안에 웃음이 터졌다. 모세스가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하자 이 목사는 “꼭 꿈을 이루라”며 격려했다.
백 사모는 한국에서 준비한 선물을 하나하나 꺼내 모세스의 손에 쥐여줬다. 옷과 학용품, 가방 등을 선물했고 모세스는 이 목사 부부에게 “엄마가 며칠 걸려 만들었다”며 나무로 엮은 둥그런 보관함을 선물했다. 이 목사는 휴대전화를 꺼내 딸 사진을 보여주며 “모세스의 언니들”이라고 소개했다.
품바 마을은 말라위의 대표적 두 부족 중 하나인 체와 부족이 살고 있는 곳이다. 산악지대 주민 대부분 농사나 목축에 종사한다. 말라위 월드비전 직원인 패트릭씨는 “마을이 생긴 이후 외국인 손님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체사(말라위)=글·사진 신상목 기자
[밀알의 기적] 메마른 땅에 물이 흐른다…말라위에 희망이 싹튼다
입력 2018-05-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