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면죄부” 거센 비난에… 대법원, 전임 수장 고발 검토

입력 2018-05-29 05:04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검찰 고발이 검토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8일 “국민께 실망을 안겨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합당한 조치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특별조사단장을 맡은 안철상 법원행정처장도 형사고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내부 징계가 적절하다는 특조단 의견에 ‘셀프 면죄부’란 법원 안팎의 비난이 쇄도하자 사법부 수장들이 검찰 수사 수용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재판 거래 정황 등에) 저 역시도 굉장히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사 결과와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며 “(고발·수사의뢰 방안도) 모두 고려하겠다”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안 처장도 “뚜렷하게 범죄 혐의가 드러난 사안에 대해서는 고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사법부 자체 해결 방침을 내세우며 3차 조사를 단행했던 김 대법원장으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재판 거래 의혹의 중심인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자칫 사법행정의 중추인 행정처 내부 자료가 검찰에 노출되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사법부 전직 수장이 검찰 수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연출될 뿐 아니라 ‘법원 스스로의 힘으로 이번 사안을 규명하겠다’는 자신의 공언도 어기게 된다. 사법부의 내홍(內訌)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하지만 강제수사 권한이 없는 사법부의 자체 조사는 처리 방식 등에서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다. 특조단은 재판 거래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4월 24일과 5월 24일 두 차례 양 전 대법원장을 직접 조사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특조단은 논란이 확산되자 취재진을 만나 양 전 대법원장 조사 과정 등을 공개했다. 조사 실무를 총괄한 김흥준 행정처 윤리감사관은 “양 전 대법원장은 퇴직을 하신 분이고 저희에겐 소환조사를 명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며 “임 전 처장 등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문건) 보고나 전달을 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김 감사관은 “조사를 진행한 판사들은 범죄 행위를 밝히는 것보다 사실관계에 대한 법률적 평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며 “주어진 권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고 평가는 국민의 몫”이라고 했다.

특조단 역시 검찰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김 감사관은 “수사 여부는 검찰이 판단할 문제”라고 전제한 뒤 “검찰이 관련 문건 등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할 경우 합리적 범위에서 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해서는 현재 서울중앙지검 에 7건의 고발이 접수된 상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논평을 내고 “검찰은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책임자들이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