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반(反)체제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M5S)’과 극우정당 ‘동맹(La Lega)’이 연립정부를 세우려다 실패했다. 두 정당이 추천한 새 총리 지명자가 나흘 만에 사퇴하고 유럽연합(EU)이 요구하는 긴축정책을 주장하는 경제학자 카를로 코타렐리(64) 전 국제통화기금(IMF) 재정국장이 임시 총리로 지명됐다. 지난 3월 총선 이후 거의 3개월 만에 연정 구성을 눈앞에 뒀던 이탈리아가 결국 조기 총선을 치르게 될 전망이다. 임시 총리는 조기 총선 때까지만 재임하게 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28일(현지시간) 지난 3월 총선을 치른 뒤 구성됐던 이탈리아 새 연정이 결국 내각을 구성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오성운동과 동맹의 추천으로 총리 후보에 오른 주세페 콘테(54) 피렌체대 교수는 전날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내각 명단을 제출했다. 그러나 마타렐라 대통령이 경제장관 후보를 거부하자 콘테 교수는 정부 구성권을 반납하고 총리 후보에서 사퇴했다. 콘테 교수는 지난 23일 마타렐라 대통령의 총리 후보 승인을 얻어 오성운동, 동맹과 함께 내각 구성 작업을 해왔다.
연정이 내각 구성에 실패한 것은 두 정당의 탈(脫)EU 정책이 마타렐라 대통령과 부딪친 탓이다. 대통령이 거부한 경제장관 후보 파올로 사보나(81)는 산업부 장관, 이탈리아 중앙은행 고위직 등을 역임한 경제학자다. 그는 이탈리아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진입을 “역사적인 실수”라고 말하는 등 EU와 유로화에 부정적인 인물이어서 친(親)EU 성향의 마타렐라 대통령의 임명 동의를 얻지 못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경제장관 후보는 이탈리아 경제를 불안하게 해 국민에게 위험을 안겨줄 수 있다”고 거부 배경을 설명했다.
오성운동과 동맹은 마타렐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발하며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는 “국민 이익을 지키려는 정부 구성 노력이 거부당했다”면서 “이제 유일한 해결책은 총선을 다시 치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루이지 디 마이오 오성운동 대표는 “대통령의 거부는 용인할 수 없다”며 “헌법을 배신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가디언은 “대통령의 장관 임명 거부는 최근 없었던 일”이라며 “대통령과 두 정당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다”고 전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날 코타렐리 전 IMF 재정국장을 만나 1시간가량 면담한 뒤 임시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고 내각 구성을 정식 요청했다. 학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중립 성향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임시 내각이 구성될 전망이다. 코타렐리는 재정긴축을 중시하기로 유명해 ‘미스터 시저스(scissors·가위)’라는 별명이 붙었다. 때문에 공공지출 확대를 원하는 오성운동과 동맹이 상·하원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타렐리가 구성한 내각이 신임투표를 통과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힘들다. 코타렐리가 구성하는 과도내각은 올가을쯤 조기 총선이 실시되면 물러나게 된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나흘 만에 伊총리 지명자 전격 사퇴… 정국 다시 회오리
입력 2018-05-28 18:52 수정 2018-05-29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