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쫓겨난 뒤 ‘로드킬’ 걱정없는 조용한 동네 27평 주택으로 이사
지난해 父와 사별 후 모친 모시고 ‘길냥이’ 21마리 돌보는 ‘代父’로
매일 대변만 4ℓ 월급 3분의2 지출… 영상 올리며 ‘팬’ 만들기 팔걷어
전부 길에서 시작됐다. 새끼 고양이가 홀로 떨고 있었다. 가여워 먹이를 주다가 덜컥 집에 데려왔다. 그다음엔 꼬리가 잘린 녀석, 학대를 당한 듯 몸이 상한 놈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모두 거리를 떠도는 고양이였다. 하나 둘 늘어난 고양이 식구는 21마리가 됐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 산새마을에 사는 정홍권(44)씨는 집을 개조하기로 했다.
5년간의 ‘이중생활’
정씨가 처음 데려온 고양이 이름은 ‘나비’다. 둘째는 ‘꽁지’. 스물여섯 살이던 2000년에 나비를 만났고, 꼬리가 뭉툭하게 잘린 꽁지는 2년 뒤 근무하던 공장 계단에서 발견했다. 생후 3개월이 채 안 된 터였다. 죽어가던 것을 병원에 데려가 일주일 입원시킨 끝에 살렸다. 다시 홀로 두면 위험하다는 수의사 말에 정씨는 꽁지도 키우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 커서는 종종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줬다. 정씨는 “그래도 21마리나 기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공장 인근을 떠도는 고양이들을 차례로 품으면서 수는 계속 불어났다. 돌볼 공간이 필요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는 고양이만의 거처로 저렴한 원룸을 임대했다. 매일 들러 보살폈는데, 야행성 고양이 여럿이 밤이면 온 집안을 뛰어다녔을 테니 민원이 들어오는 게 당연했다. 1년 만에 원룸에서 쫓겨났다.
새롭게 찾은 곳이 산새마을이었다. 집값이 저렴했고 차가 많지 않아 ‘로드킬’ 위험이 적었다. 마을 텃밭과 가까운 27평(89㎡)짜리 집을 골랐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 습성에 맞춰 다리 긴 식탁과 캣타워를 여럿 들여놨다. 그를 위한 것은 이불이 전부였다.
집을 수리하다
퇴근하면 부모님 집에서 저녁을 먹고 고양이가 있는 집으로 다시 ‘출근’했다. 고양이 화장실에 모래를 깔고 먹이를 주는 등 할 일을 마치면 그제야 지친 몸을 방 한쪽 이불에 누였다. 그런 정씨의 배 위에, 머리맡과 옆구리에 고양이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마음이 놓였다. 이런 ‘이중생활’을 5년이나 반복했다.
정씨가 ‘두 집 살림’을 정리한 건 지난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였다. 부모님 집을 처분하고 ‘고양이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로 했다. 고양이 21마리와 어머니와 정씨, 스물세 식구가 동거하려면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했다. 먼저 집 중앙에 있던 문을 완전히 막아 고양이와 어머니 공간을 분리했다. 어머니 공간은 10평(33㎡) 남짓, 고양이에게 할당한 구역은 8평(26㎡) 정도였다.
고양이 방은 한가운데 벽이 있어 두 공간으로 나뉜다. 정씨는 천장을 높게 트고 벽을 기준으로 작은 다락 두 개를 만들었다. 그 아래 캣타워 5개를 마련해 고양이들이 다락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게 했다. 또 햇볕 쬐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창 앞에 커다란 식탁도 뒀다. 푹신한 의자 두 개, 화장실 네 개까지 준비했다.
정작 정씨를 위한 공간은 여전히 없다. 자기 방이 없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지인이 말해줘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늘 바쁘다. 매일 고양이 대변만 2ℓ 쓰레기봉투 두 개 분량이 나온다. 함께 사는 21마리 외에도 정씨가 돌보는 마을 길고양이가 15마리쯤 된다. 금전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취향에 맞춰 사료 네 종류를 준비하고 때마다 병원에 데려간다. 월급의 3분의 2 이상을 고양이에게 쓰고 있다고 했다.
가족들은 그런 정씨를 포기했다.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더 데려오지만 말라”고 한다. 정씨도 여기서 멈출 생각이다. 한 번 사람 손을 탄 고양이는 거리로 돌아가면 생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데, 여건상 더 많은 수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
정씨는 그동안 10번의 이별을 했다. 지난해에는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전염성 ‘복막염’이 돌아 여러 마리가 곁을 떠났다.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남은 고양이들을 위해 빨리 기운을 차리려 노력한다. 앞으로 이별이 스물한 번이나 남아 있지 않은가. 그리울 땐 그간 찍어둔 사진이나 화장 후 유골로 만든 돌 모양 목걸이를 본다.
언젠가 고양이 방을 개방하는 게 꿈이다. 누구나 방문해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원한다면 함께 돌보는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두 해 전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올리며 ‘팬’을 만들려 애쓴다.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이 더 사랑받기를 바라면서.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집의 절반을 고양이에게 내준 산새마을의 “애묘남”
입력 2018-05-28 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