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최저임금, 정부 나서기보다 기업·노조에 맡겨야”

입력 2018-05-28 05:05 수정 2018-05-28 17:25
리처드 프리먼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오른쪽)와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영향 등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최저임금 고용 영향 논란 여지 중간소득 대비 비율이 중요… 30% 정도라면 문제 없어
정부 생산성 향상 조언 역할, 기업 퇴출 여부는 시장 몫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 대기업 노조, 협상 과정서 적게 인상하려는 자세 필요


최저임금 인상, 대-중소기업 임금 양극화, 4차 산업혁명시대 대응 등 한국경제가 직면한 현안의 해법은 뭘까. 중절모를 쓴 노(老)신사가 내놓은 답은 ‘시장’이었다.

전 세계 노동경제학계가 주목하는 석학인 리처드 프리먼(75)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최저임금 등 문제와 관련해 기업과 노조가 직접 최적의 접점을 찾는 게 정답이라고 제언했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보다 시장에 맡기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람에서 기계로 부(富)의 이동이 급속히 이뤄짐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답도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봤다. ‘국부 펀드’ 등을 만들어 신기술이 벌어들인 수익을 공유하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프리먼 교수의 해법을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배규식(60) 한국노동연구원장과 진행한 대담을 통해 들어 봤다.

배 원장=한국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위해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이중구조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가. 또 올해 최저임금을 전년대비 16.4%나 급격히 인상한 게 고용 창출에 부정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프리먼 교수=최저임금은 많은 임금 근로자에게 소득 분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용과 관련해선,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들을 보면 약간 부정적인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영향이 너무 적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 어떤 국가의 사례나 보고서를 봐도 고용에 아주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단언할 수 없다. 임금 인상을 너무 많이 해서 충격적으로 일자리가 줄었다는 국가는 한 번도 없었다. 그 어떤 국가도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노조도 최저임금을 너무 많이 높여서 오히려 노조원 수가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노조원 수를 유지하는 선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원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간의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프리먼=(전체 임금근로자의) 중간소득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어느 정도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가령 인상한 최저임금이 중간소득 대비 30% 정도라면 그리 걱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소득의 50∼60%까지 간다면 문제가 될 거라고 본다. 미국에선 최저임금 도입했을 때 한국보다 훨씬 높았지만 별다른 고용 문제가 없었다. 프랑스의 경우도 최저임금 수준을 상당히 높게 가져가지만 문제는 없다. 사실 보통 기업들은 최저임금을 올려도 흡수할 역량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엄살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올해 최저임금을 인상하면서 30인 이하 기업에 ‘일자리 안정 자금’을 보조금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자영업자 또는 영세기업들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프리먼=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업은 퇴출되도록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임금 보조금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면 ‘이렇게 임금 높아지면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생산성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정부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한다고 조언할 수는 있겠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알아서 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을 높였을 때 누가 살아남을지는 시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최저임금 외에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나.

프리먼=프랑스에서는 노조 가입률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줄었다. 중소기업의 직원들은 대기업 근로자 못지않은 혜택을 받는다. 유럽 기업들은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영세기업이 저렴한 인건비를 내세워서 자기들보다 유리한 가격을 내세우기를 원하지 않는다. 소기업들도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믿는다. 노사 간 대화도 매우 적극적이다. 덕분에 성공적으로 임금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대-중소기업의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또 다른 제언이 있다면.

프리먼=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를 줄이려면 매년 꾸준히 영세기업의 임금을 높여가는 게 필요하다. 이와 함께 대기업의 경우 임금 인상 폭을 적게 가져가야 한다. 그러려면 대기업 노조가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낮은 수준의 임금 인상 협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수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압박을 가해서 대기업 노조 구조나 조직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방법이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신기술과 인간 간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이 필요할 것 같다.

프리먼=지금 가장 큰 변화는 인간과 협력하는 로봇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봇(협력 로봇·Cooperative robot)’이라고 부른다. 자동차 공장을 보면 커다란 장비가 일은 다하고 사람은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사무실에서는 사람이 일하고 로봇이 지원한다. 인간과 로봇이 한 팀으로 일하는 형태가 앞으로 굉장히 증가할 것이다. 기업들은 ‘우리 근로자들이 로봇과 협력하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연구나 방법을 물색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AI)은 관리직의 일을 많이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임금 일자리를 많이 대체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AI 기술 발달로 더 이상 회계사를 고용할 필요가 없게 됐다. 다만 장기적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 기후변화나 빈곤 등의 문제가 시급하다. 우선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할 수 있는 일에 적응을 해가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어떻게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

프리먼=장기적으로 ‘부(富)’가 사람에서 기계로 이동하게 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기계 또는 신기술이 버는 수익의 일부를 공유하는 것이다. ‘시민 오너십 펀드(Citizen Ownership Fund)’와 같은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알래스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알래스카는 펀드를 조성해 석유를 팔거나 땅을 판매·임대해 얻은 수익을 펀드 배당으로 시민에게 돌려준다. 수익이 높았던 해에는 0세부터 고령까지 모든 시민에게 연간 2500달러를 배당했다. 4인 가족이면 1만 달러를 받은 것이다. 가장 포용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분쟁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 프리먼 석좌교수는
노동경제학계 거두… 한국 사정에도 밝아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로 손꼽힌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국제 노동기준과 노동자의 경영참여, 정보기술을 통한 노동운동의 진화 등 다양한 주제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1년 미국에서 발생한 ‘월가(Wall Street) 시위’ 때 시위대를 ‘미국의 양심’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2009년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의 노동현안에 대한 주제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등 한국 사정에도 비교적 밝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내 삶을 바꾸는 혁신적 포용국가’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도입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며 문재인정부의 올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지지하기도 했다.

프리먼 교수와 대담을 진행한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 역시 노사관계 분야에 정통한 노동경제학자다. 지난 1월 12대 한국노동연구원장으로 취임했다. 영국 워릭대에서 노사관계 석사, 산업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과 노동연 노사정사회정책연구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