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박근혜정부 청와대와의 관계를 위해 전교조 법외노조 여부 판단조차 뒤집으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대법원이 협조할 수 있는 방안까지 검토했다는 문건도 나왔다. 모두 대법원이 추진하던 상고법원에 대한 청와대 협조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5일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 판사들을 성향에 따라 분류한 정황은 있으나 실질적인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진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특조단이 새롭게 확보한 문건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개설을 위해 각종 사안에서 청와대에 협조할 방안을 검토한 정황이 다수 확인됐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처리와 관련, 행정처는 2014년 “전교조의 재항고 인용을 기각하는 것이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상당한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문건을 작성했다. 특조단은 “상고법원 추진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의 적절성에 눈감아버렸다”고 지적했다. 또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한 협조→당분간 한계’ ‘기소 전까지는 적정한 영장 발부 외에는 다른 협력 방안 없음’ ‘주요 관심 사건 처리→BH측 입장 최대한 경청하는 스탠스로 우호적 관계 유지’ 등 내용이 담긴 문건도 확인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다음 주쯤 관련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특조단은 또 행정처가 법관들의 성향이나 동향, 재산 관계를 파악한 사실은 있지만 조직적·체계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이에 따라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추가조사위원회에서 발표한 원세훈 전 원장 항소심 선고 전후에 청와대와 행정처가 교감한 정황이 담긴 문건에 대한 추가 조사 내용도 포함됐다. 특조단은 “사법행정이 재판에 관여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에 BH(청와대)가 흡족해했다는 내용의 문건에 대해서는 “판결 선고 후 각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문건이고 ‘흡족’이라는 표현은 아니지만 청와대가 긍정 평가했다는 기재는 있다”고 설명했다.
특조단은 블랙리스트와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 작성자를 형사처벌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돼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조단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의혹에 관련된 행위자들이 관여된 정도를 정리, 징계청구권자 또는 인사권자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특조단은 대신 “사법부 관료화를 방지할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재판의 독립이 침해된 경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고민했다”고 보고서에 썼다. 제도 개선을 통해 사법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이로써 1년여간 세 차례 진행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많이 남아있다. 앞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도 김 대법원장과 추가조사위원 6명을 비밀침해·직권남용 등으로 고발했다. 검찰이 수사를 본격화할 경우 전·현직 대법원장이 수사선상에 오르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대법원, ‘전교조 법외노조’ 카드로 靑과 코드 맞추려 했다
입력 2018-05-25 18:42 수정 2018-05-26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