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하면서 역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북·미가 정상 간 만남을 추진한 것은 2000년 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정상회담이 불발된 이후 18년 만이었다.
북한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북·미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북한은 2000년 10월 서열 2위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미국에 특사로 보냈다. 조 부위원장은 워싱턴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 위원장의 ‘평양 초청’ 서한을 전달했다. 이를 전후해 클린턴 대통령의 연내 방북 방침도 공개됐다.
북한 특사단이 워싱턴을 떠난 직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평양을 찾았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논의했다.
그해 11월 미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클린턴의 방북은 결국 무산됐다. 18년 전에도 미국이 먼저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한 셈이다.
북·미 대화는 합의와 파기를 반복해 왔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방북하며 북·미 대화의 단초가 생겼다. 북·미 고위급 회담을 거쳐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도 도출됐다.
그러나 2002년 10월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우라늄으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음이 드러나자 북·미 관계는 다시 경색됐다. 이후 북핵 문제는 6자회담 틀에서 다뤄졌다. 2005년 북핵 해결 로드맵이 담긴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와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사문화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인 2012년에는 김계관 당시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2·29 합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합의도 불과 2개월 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인 은하 3호를 발사하며 유명무실해졌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2012년에도 北미사일에 ‘2·29 합의’ 파기… 北美대화 실패 전례
입력 2018-05-26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