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첫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입력 2018-05-24 23:45

북한이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를 폭파시켜 폐기했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12년간 북한 핵실험의 상징적인 장소였던 풍계리 핵실험장이 사라지게 됐다.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긴 여정의 출발선에서 첫발을 뗀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핵실험장 공개 폐기 약속을 이행함에 따라 다음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맞바꾸는 ‘빅딜’ 기대감도 한층 커졌다.

북한은 이날 오전 11시 핵실험장 북쪽에 있는 2번 갱도와 관측소를 폭파했다. 2번 갱도는 2∼6차 핵실험이 이뤄진 핵심 시설이다. 북한은 이어 서쪽에 있는 4번 갱도와 단야장(금속을 불에 달궈 벼리는 작업을 하는 곳), 3번 갱도와 관측소를 순차적으로 폭파했다. 핵실험장 내에 있는 생활시설 5개동과 군 막사 2개동도 함께 폭파했다. 동쪽에 있는 1번 갱도는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당시 방사능 오염으로 폐쇄된 상태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는 한국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5개국 취재단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들은 3번 갱도 위쪽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갱도 폭파를 지켜봤을 것으로 관측된다.

공동취재단에 따르면 북측 인사가 오전 11시 2번 갱도를 폭파하기 직전 취재단에 “촬영 준비 됐느냐”고 물었고, 기자들이 “준비됐다”고 하자 ‘3, 2, 1’ 카운트다운을 한 뒤 ‘꽝’ 하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해발 2205m의 만탑산을 흔드는 묵직한 굉음과 함께 갱도 입구에 있는 흙과 부서진 바위들이 쏟아져 나왔다.

공동취재단은 “갱도 입구 쪽에서 첫 폭음이 들린 이후 안쪽으로 더 들어간 듯한 곳에서 두 번 정도 폭음이 울렸다”고 말했다. 갱도 폭파 15초 후 관측소가 폭파됐을 땐 굉음과 함께 짙은 연기가 계곡을 뒤덮었다. 연기가 걷히자 사방에 관측소에서 부서져 나온 파편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아직 핵실험을 하지 않은 3, 4번 갱도가 얼마나 완벽하게 지하 깊숙한 곳까지 폭파됐느냐가 ‘미래 핵 능력’ 포기를 가늠할 단서라고 보고 있다. 이는 향후 폭파 영상 등을 분석해 일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실험을 담당하는 핵무기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핵실험장의 모든 갱도들을 폭발의 방법으로 붕락시키고 갱도 입구들을 완전히 페쇄했다”며 “투명성이 보장된 핵실험장 폐기를 통해 우리 정부의 주동적이며 평화애호적인 노력이 다시 한 번 확증됐다”고 밝혔다.

풍계리 핵실험장은 길주군 시내에서 42㎞ 떨어진 만탑산 골짜기에 위치해 있다. 주변이 해발 1000m 이상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암반 대부분이 화강암이어서 핵실험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로 평가됐다. 북한은 이곳에서 총 여섯 번의 핵실험을 했다. 북한 핵 도발의 핵심 시설이던 이곳이 비핵화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 된 셈이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었다. NSC 상임위는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첫 번째 조치임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풍계리=공동취재단,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