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를 폭파했다. 핵실험장 폐기를 공언한 지 34일 만이다. 이곳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여섯 차례 핵실험을 한 장소로, 북한 핵 연구개발의 핵심 지역이다. 북한이 지난달 전략적 노선 전환과 함께 밝힌 비핵화 의지를 실행으로 옮긴 첫걸음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단계적·동시적 이행을 강조해온 북한이 미국의 보상 없이 선제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이번 주말 싱가포르 실무접촉과 다음 주로 예상되는 고위급 접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북한이 미래 핵을 사실상 포기하게 됨을 의미한다. 다음 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본격적인 핵 폐기를 논의하기에 앞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체제안전 보장이나 경제적 지원 등을 최대치로 끌어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요구에 호응함으로써 미국의 성의 있는 대응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든 셈이다.
조금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핵실험장 폐기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초기에 해당하는 동결과 불능화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여섯 차례 핵실험을 진행한 탓에 추가 핵실험의 필요성이 크지 않아 폐기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북한은 이마저도 핵시설 폐기의 실체를 검증할 수 있는 전문가 참여를 배제했다. 전문가들이 현장에 들어가 핵실험에 사용된 장비와 갱도를 살펴본 뒤 폐기하는 검증 절차가 빠진 것이다. 북한의 핵 제조 능력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조치로 판단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면 굳이 제조 능력을 감출 이유가 없다. 그래서 신중한 대응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금 중요한 점은 북한의 과거와 현재 핵 능력을 정확히 파악해 되돌릴 수 없도록 폐기해야 하는 것이다. 자유롭고 철저한 검증과 사찰이 필수 요소다.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쇼가 보여주듯 핵시설은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다. 첫걸음부터 의심을 자초하지 말길 바란다. 그런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관련 국제기구 전문가들을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의 검증 절차를 밟는 게 필요하다. 만약 검증과 사찰처럼 외부의 개입을 수용해야 하는 절차에 부정적 태도로 일관하면 비핵화 약속의 진정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핵탄두와 핵물질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상당 부분을 조기에 해외로 반출하는 데도 동의하는 게 올바르다. 과거와 현재의 핵까지 폐기함으로써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시킨다면 미국의 초대형 당근도 훨씬 앞당겨 실현될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등 국제규범의 틀 안으로 들어와 책임 있게 행동하길 기대한다.
[사설] 北,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반드시 검증절차 밟아야
입력 2018-05-25 05:01